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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3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94회) (睦俊相, 29세), 심헌 섭(沈憲燮, 32세, 농 업), 평택리 한영수 (韓泳洙, 28세, 농업), 민응환 등이 나서 독 립만세를 외쳤다. 학 생과 군중 3백여 명 이 호응하여 함께 독 립만세를 외쳤다. 진위경찰서에서 출동했다. 13명이 연행되었다. 이 중 학생 안충수 등 6명은 학교 교장이 보증을 서서 풀 려났다. 안종철외 1명도 풀려나고, 주도자 이도상, 목 준상, 심헌섭, 한영수, 민응환 5명은 보안법위반 기타 로 3월 20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첩되었다. 대개 3월 첫 열흘 어간에 일어난 지방의 만세시위 는 보통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경우가 많았다. 평택 에서도 학생들이 참여했으나, 서른 전후의 미곡상 등 중장년층들이 처음부터 주도하여 시작되었다. 평 택 만세시위의 앞날이 대규모화 해 질 것을 예고하 는 일이었다. 첫 시위 후 20일간 잠잠했다. 그러나 꺼 진 불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치열한 속불이 민중 속 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상인들의 철시(撤市) 시위 3월 31일 월요일. 평택의 조선인 상점 2곳에 평 택 우편국 소인이 찍힌 우편으로 협박장이 배달되 었다. “상점 문을 닫고 만세시위에 참여하시오!“ 시 장의 일반 상점 주인들이 “위험을 느끼고”라고 했 지만, 상인들도 3.1운동의 취지에 공감했던 까닭에 한마음이 되어 다음날인 4월 1일부터 바로 각 상점 문들을 닫고 철시시위에 들어갔다. 군수와 경찰서장은 당황했다. 철시로 인해 독립만 세 시위 분위기가 더욱 치열하게 확산될 것을 우려 했다. 군수와 경찰서장이 유력한 상인 십여 명을 진 위군청으로 불러들였다. “당장 상점 문을 여시오!“ 그러나 상인들은 말했다. “후환이 두렵소.” 상인들은 둘러대며 개점하지 않았다. 3월 31일부터 4월 1일의 이틀사이에 “경성에서 결사대가 평택으로 내려 갔다”는 풍설이 돌았다. 진 위경찰서는 더욱 긴장했다. 31일은 밤새도록 눈에 불을 켜고 경계에 종사했다. 바로 그즈음 인접한 안성군 원곡면에서는 매일 밤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3월 31일에는 1천5백여 명이 독립만세를 불렀다. 안성의 일본인들이 불안하 여 31일 밤 안성 경찰서로 부터 자동차를 보내어 응원 을 요청했다. 평택 수비병이 안성으로 급파되었다. 그 러나 평택 사정도 급했다. 평택의 조선인 상점들이 4 월 1일부터 철시에 들어가자 거래도 막히고 민심이 불 안해졌다. 일제 군경의 시내 경계는 더욱 엄중해졌다. 옛 평택 중심가 거리 3.11 평택 만세시위를 주도한  미곡상 이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