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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뉴욕한인교회는 미국 동부지역 한인들의 종교적 · 정치적 · 사회적 온갖 모임의 장소였다. 또한 미국 동부지역의 한인 동포와, 유학생 등에게 편의를 제공하였으며, 독립운동을 모의하고 이민생활에 지 친 고단한 삶의 휴식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뉴욕의 한인들이 발간한 신문 『삼일신보』 미국 동부지역의 한인 유학생들이 중심이 된 뉴욕 교민단에서는 허정, 장덕수, 윤홍섭, 김양수 등이 주 도가 되어 1928년 6월 29일 『삼일신보』를 창간하였 다. 「 삼일신보 창간 취지서」 에 의하면, “이 기관은 어 떠한 일부분의 세력을 대표함도 아니오, 또 그 목적 한 바가 결코 소수의 사리사익(私利私益)을 도모코자 함도 아니오니, 즉 우리의 광복대업을 위한 전 민족 의 공기(公器)인 단단(斷斷) 선명(宣明)하는 바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삼일신보』는 “대한민국의 독립 을 완성키 위하여 한민족이 자각을 촉성하며 민론(民 論)을 환기하며 대동단결의 기세(氣勢)를 진작케 함” 이라고 주장하였다. 『삼일신보』 창간은 뉴욕교민단장 허정과 『동아일 보』 특파원이기도 한 유학생 장덕수가 주동이 되었 다. 신문의 제호는 3 · 1운동 정신을 계승 · 발전시킨다 는 의미에서 『삼일신보』로 하였고, 노농대중을 위한 진보적 언론지를 지향한다고 하였다. 원래 창간일은 1928년 3월 1일로 하였으나, 활자가 제 때에 배송되 지 않아 부득이 6월 29일에 창간호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재정은 허정 · 윤홍섭 · 신성구 등이 담당하였 고, 신문 제작은 장덕수가 주관하였다. 장덕수는 미 국내에서 국문활자를 구할 수 없자,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로부터 국문 활자를 우송받았다. 신문사 사옥 은 맨하턴 23가의 한 빌딩 사무실로 정하였다. 임원 진은 사장 허정, 주필 김양수, 편집 장덕수 · 김도연 · 최 순주, 영업 홍득수, 재정 신성구 등으로 구성되었다. 1928년 6월 29일 창간 당시부터 허정이 신문사 사 장으로 발간에 주역하다가, 구미위원부 활동을 돕기 위해 워싱턴으로 가면서, 경영책임을 이기붕에게 넘 겼다. 1929년 편집과 제작을 담당한 장덕수도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창간 2년만인 1930년 6 월 폐간되었다.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 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 사회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 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 『삼일신보』 창간 기사(『신한민보』 1928년 7월 21일자)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에서 한국의 독립을 외치다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