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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교회에서 합동으로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합동 기 념식은 교민단 부단장 홍득수가 사회를 맡고, 곽림대 국민회 대표의 축사가 있었고, 서재필이 연설을 하였 다. 1929년에도 뉴욕 국민회와 교민단이 의사를 통 일하기로 하고, 혁명의 최고기관으로 임시정부를 봉 대하기로 하였다. 뉴욕지역 한국독립운동의 책원지, 뉴욕한인교회 미국 동부지역의 한인들은 1921년 3월 2일 뉴욕 에 있는 타운홀(Town Hall)에서 1,300여 명이 참석 한 대규모 3 · 1절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이 3 · 1절 기 념식을 계기로 그해 4월 18일 임종순 목사에 의해 뉴 욕한인교회가 설립되었다. 뉴욕한인교회의 교인들 가운데에는 당시 콜럼비아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유 학생들이 많았다. 교회는 뉴욕 내 한인 민족운동의 거점이자 유학생들과 정치적 망명자들의 임시거처 가 되었다. 뉴욕한인교회의 영문명은 ‘Korean Church and Institute’이다. 이는 단순한 교회가 아닌 성경공부 나 이민자를 위한 교육의 범위를 넘어서 한인들을 대표 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뉴욕에서 생 활하던 이기붕은 “뉴욕에는 한인교회가 21가에 있 었고, 당시 김영섭 목사가 유학생들의 정신적 지도에 당하고 있었다”고 하였으며, 김도연도 “그 당시 뉴욕 교회에는 김영섭 목사가 주도하는 한인교회가 있었 는데, 이곳에서 활발한 학생활동을 전개하였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뉴욕한인교회는 매디슨가(Madison Avenue) 감리 교회를 빌려 예배를 보기 시작하다가 감리교단의 재 정지원을 받아 맨하탄 시가(459 W. 21th St.)에 독자 적인 교회 건물을 마련하였다. 1927년 10월 허드슨 강변에 위치한 현재의 위치(663 W. 115th St.)로 이 전하였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으로 뉴욕 한인들도 경제적인 위기를 겪게 되자, 교회에서는 동포들에게 생활공간을 제공하였으며, 조국의 독립운동을 도모 하고 후원하는 중심기관이 되었다. 뉴욕한인교회 입구 1921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된 타운홀 94 2023년 8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