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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시론 • 동양척식회사, 경제수탈의 뿌리였다 83 많은 일본인 농업회사가 설립되었다. 특히, 1910년 8월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탄되면서 농업이민은 현 저하게 늘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토지 수탈 강화 한편, 1908년 12월 한국통감부는 우리 조정에 압 력을 가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법(東洋拓殖株式會社 法)을 제정하고, 조 · 일 양국의 국적을 가진 ‘동양척식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동양척식회 사’는 1909년(순종 3년) 1월 19일 업무를 개시했는 데, 이로부터 토지매입을 본격화하였다. 대한제국 조 정으로부터 받은 출자분 토지 1만7,714 정보를 확보 하였으며, 1920년까지 9만700여 정보를 매입하였 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 토지는 농업이민으 로 조선에 온 일본인들에게 양도함으로써 일본인을 배불리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동양척식회사’는 1920년 이후부터 임야(林野) 경영에 주력하여 관유지 불하의 혜택을 받았는데, 1942년 말경 이 회사가 확보한 임야는 16만 정보였 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은 ‘동양척식회사’를 통해서 일본인들이 조 선 에 이주하는 조건으로 토지와 가옥을 마련해 주는 등 각종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이로써, 우리 농민들 은 소유 토지를 한 뼘 한 뼘 잃어갔으며, 일본인 지 주들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처럼 ‘동양척식회사’는 조선의 토지수탈의 선봉에 서 있어서 조선인들의 원성의 대상이었다. 이로써, ‘동양척식회사’에 의하여 삶의 터전인 토 지를 잃게 된 조선인들이 살길을 찾아 낯설고 물설 은 만주(滿洲, 중국 동북지방)로 이주하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일본 수탈의 상징 동양척식주식회사 본점(경성)(한국학중앙연구 원 제공)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건물(충청투데이 제공)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 Herzen 교육대학교에서 명예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처장 ٠ 법과대학장 ٠ 산업 노사대학원장 ٠ 행정법무대학원장 ٠ 부총장 ٠ 총장 직무대행 등의 보직을 수행하였 다. 전공분야는 민법이며, 그중에서 특히 불법행위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 구활동을 하였다. 정년 이후에는 정심서실(正心書室)을 열고, 정심법학 포럼 대 표를 맡아서 회원들과 법학관련 학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필자 권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