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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23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이렇게 하여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일본은 1894년(고종31년) 7월 갑오 변란(甲午變亂)을 일으킨 후 우리 조정에 압력을 가 하여 친일성향의 김홍집을 영의정으로 하는 내각을 출범시키고, 내정개혁을 추진하였다. 조선침략을 위 한 길닦기였다. 1895년(고종 32년) 10월에는 우리나 라 주재 일본공사 미우라 고오로(三浦梧樓)가 지휘한 일본군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참살되는 어처구니 없 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갑오변란 이후 명성황후가 러시아를 끌어들였다고 판단한 일본의 계획된 일이 었다. 이 또한 일본의 조선침략을 위한 수순이었다. 토지수탈을 시작으로 침략 본격화 1905년(고종 42년) 11월 17일, 일본은 이른 바 ‘을 사오조약’에 의하여 대한제국에 설치한 한국통감부 (統監府)로 하여금 토지조사에 착수하게 했는데, 이 는 일본인의 토지투자를 촉진하고 우리의 민족자 본을 수탈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이를 위하여 1906년(고종 43년) 7월 24일 부동산조사회(不動産 調査會)를 설치하고, 부동산에 관한 관습조사에 착수 하였다. 1910년(순종 4년) 1월 에는 ‘토지조사 8개년 계 획’을 수립하였는데, 이러 한 계획은 그 해 8월 29일 총독부(總督府) 시대가 시 작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 후, 일본은 토지조사결 과를 기초로 하여 토지대 장을 만들고, 경제침략의 수단으로 토지를 수탈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터잡아 일본인들의 토지취득에 속도를 더해나갔다. 이는 일 본이 조선의 식민지화를 굳히기 위한 작업이었다. 조선의 토지제도는 그 토지의 귀속관계에 따라 관 유지(官有地) · 궁유지(宮有地) · 민유지(民有地)로 구분 되어 있었는데, 외국인의 토지소유는 허용되지 않았 다. 그러던 것이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토 지가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1908년(순종 2년) 1월 삼림법(森林法)을 제정하여 ‘조선총독부가 정한 특별한 연고가 있는 삼림을 그 연고자에게 팔 수 있도록 함으로써’ 조선의 삼림을 일본인들이 구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일 본은 경부선과 경의선(京義線) 철도 부설을 빙자해서 필요 이상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고, 이 토지를 일 본인들에게 불하(拂下)해주는 방식으로 토지수탈을 자행하였다. 미간지(未墾地)나 역둔토(驛屯土)를 값 싸게 불하하는 방법도 동원되었다. 이리하여 점차 일본인 대지주가 늘어나면서 조선 인을 소작농으로 삼아 고율의 소작료를 받아챙기는 수법으로 부를 늘려갔으며, 농업이민이 늘어나면서 명성황후 참살의 주역 미우라 고로 일본인들이 명성황후 참살에 사용한 칼. 칼집에 ‘일순전 광 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 한순간 단칼에 늙은 여우를  찌르다)’는 문구가 쓰여있다.(혜문스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