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page

80 2023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19세기 후반 일본의 조선 침략 1876년(고종 13년), 일본은 강화도조약(江華島條 約, 韓日修好條規)을 체결하고, 정치적 · 경제적 세력 을 조선에 침투시키면서 침략의 발판을 다져나갔다. 이는 1875년(고종 12년) 9월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 號)의 강화해협과 강화도 일대 불법침입으로 야기된 조(朝) · 일(日) 양국의 군사충돌에서 이어진 일이었다. 일본은 군사충돌의 책임을 우리 측에 씌워 자국의 전권대사를 파견하여 적반하장격으로 힐문(詰問 )함 과 아울러 무력으로 강압, 개항을 강요함으로써 강 화도조약을 체결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렇게 체결된 강화도조약은 국내의 사정을 요동 치게 하였는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무너지고 개화파의 세력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 중 1882 년(고종 19년) 6월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나 나 라의 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 일본, ‘을사5조약’ 후 한국통감부 앞세워 토지수탈 감행 1908년 말 동양척식회사 세워 토지 수탈 본격화 순국시론 동양척식회사, 경제수탈의 뿌리였다 글  권용우(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일본은 ‘동양척식회사’를 통해서 일본인들이 조선에 이주하는 조건으로 토지와 가옥을 마련해 주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 하였다. 이로써, 우리 농민들은 소유 토지를 한 뼘 한 뼘 잃어갔으며, 일본인 지주들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결과를 낳 게 되었다. 이처럼 ‘동양척식회사’는 조선 토지수탈의 선봉에 서 있어서 조선인들의 원성의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