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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독립운동가 • 윤준희 · 임국정 · 한상호 · 김강 지사 65 한인들은 3월 13일 용정의 서전평야(瑞甸平野)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태극기를 들고 거리시위에 돌입했다. 청년들은 3 · 13 용정 만세운동 직후 오로 지 ‘독립전쟁’을 통해서만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깨달았다. 윤준희와 한상호, 임국정, 최이붕 등 철혈 광복단 단원들은 비밀리에 모여 의견을 모았다. 회 의 이후 무장투쟁에 필요한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자신들 집에 있는 송아지들을 팔아 마련한 돈을 가 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당시 내전 중이었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다양한 방 법을 통하여 무기를 구매할 수 있었고, 1919년 3월 17일 중국 관내와 만주, 국내 지역 등 대표들이 결성 한 대한국민의회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한 한상호는 같은 철혈광복단 단원이자 대한국민의 회 선전부장(宣戰部長) 대리로 활동하던 김하석의 소 개로 600여 명의 한인 청년들과 함께 동중철도(東中 鐵道)의 호르바트(Д.Л. Хорват) 부대로 파송되었다. 임국정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의 김하 석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독립전쟁에 필요한 무 기를 구매하는 활동을 이어나갔다. 윤준희도 영신학 교 교원이었던 신영욱(辛永旭) 등과 함께 중국과 러 시아 국경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러시 아 등지에서 구매한 무기를 자신이 서기로 일하던 용정촌 야소병원(耶蘇病院)에 숨기며 독립전쟁에 필 요한 무기를 모으는 데 힘을 기울였다. 군자금 모집을 위한 계획도 본격적으로 수립되기 시작했다. 1919년 9월 초순 임국정과 최이붕은 김 강과 서성권(徐成權)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간도 청년회(間島靑年會)’에 참여하기 위해 구소하(九所河) 지역에 도착했다. 간도청년회 회원들은 당시 대한국 민의회 선전부와 긴밀히 연락하며 활동했다. 임국정 은 이때 간도청년회 운동부장에 선임되어 활동했다. 간도청년회 조직 집회 직후 윤준희와 임국정, 최이 붕은 김하석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위해 조선은행 자금을 탈취할 계획을 촉구하는 서신을 받아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해당 계획은 당시 조선은행 회 령지점 서기로 일하고 있던 전홍섭을 포섭하여 자금 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1919년 12월 전홍섭은 1920 년 1월 4, 5일경 조선은행 회령지점으로부터 용정지 점까지 현금 수송이 진행될 것 같다는 사실을 알려 왔다. 이에 1920년 1월 1일, 윤준희와 최이붕, 임국 정은 김하석과 만나 작전을 가다듬고, 1월 4일 작전 을 거행할 것을 결정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윤준 희, 임국정, 한상호 등 6명은 일제로부터 현금 15만 원을 성공적으로 탈취했다. 이렇듯 ‘간도 15만원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단순 탈취사건이 아니었다. ‘간도 15만원 사건’은 3 · 13 용정 만세운동 이후 철혈광복단 청년들이 철저 히 계획하여 달성한 ‘독립전쟁’의 쾌거였다. 밀고로 스러진 청년들의 ‘독립전쟁’ 추격대를 따돌리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던 임국정 이 1월 9일 의란구 유채구에 도착하며, ‘간도 15만원 사건’의 주역 청년들이 한 장소에 모였다. 청년들은 이곳에 머물고 있던 김하석과 논의 끝에 블라디보스 토크로 이동하여 탈취한 자금을 대한국민의회의 선 전부에 헌납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이때 리더격인 윤준희가 재무취급자로 임명되었다. 청년들은 1월 10일 국경을 넘어 러시아령 모구위 (毛口威)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자금을 분산하여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