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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2023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8월의 독립운동가 남도 함흥군 함흥면에서 태어나, 일찍이 가족들과 함께 북간도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임국정은 최 이붕과 함께 창동학교에서 수학하며 민족의식을 길 렀다. 임국정은 창동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는 한편, ‘훈춘선인기독교우회(琿春鮮人基督敎友會)’의 서기 (書記)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이어나갔다. 임국정과 최이붕은 창동학교를 졸업한 후, 독립전 쟁에 나서기 위해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에 입 교했다. 동림무관학교는 독립전쟁에 필요한 장교들 을 양성하기 위해 이동휘(李東輝)와 이종호(李鍾浩) 등이 1914년 6월 중국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 溝)에 설립한 무관학교였다. 이때 임국정과 최이붕 은 동림무관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던 김하석(金夏 錫)에게 교육받으며, 인연을 쌓았다. 그러나 일제의 압박에 동림무관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고, 임국정은 30여 명의 학생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자 를 대거 모집하던 러시아 우랄 지역으로 떠났다. ‘독립전쟁’에 나선 청년들, ‘간도 15만원 사건’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과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으로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파악한 북 간 도와 연해주 지역 한인사회는 파리강화회의에 한인 대표를 파견하기로 결의했다. 한편 청년들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고자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을 조직했다. 철혈광복단은 1911년 초 이동휘가 간도 에 왔을 때 조직한 광복단과 러시아 지역에서 1917 년 2월 혁명 이전 조직된 청년 비밀결사인 철혈단이 1918년 가을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에 따라 고양된 운동조건에 부응하여 통합·조직된 단체였다. 철혈광 복단에는 동림무관학교와 명동·창동·영신학교 등 북 간도 민족학교 출신 청년들이 대거 참여했다. 철혈 광복단은 비합법적인 전투적 비밀결사 단체로서 대 중적·합법적 정치단체였던 대한국민의회나 북간도 대한국민회의 인적 공급원 역할을 하였다. 윤준희와 한상호, 임국정, 최이붕 등도 철혈광복단에 참여해 조국의 독립에 종사하겠다는 맹세를 하며 독립전쟁 을 준비해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9년 3월 7일 북간도 한인들 에게 국내의 3 · 1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북간도 윤준희 한상호 거사 직전 블라디보스톡에서 기념활영한 최이붕(최계립)과 임국 정(우측). 오른쪽은 최봉설(최계립) 편지(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