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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3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향기나는 삶 이야기 동지 한훈(한우석)에 비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박문용 선생 박이사의 할아버지인 박문용(1882~1929)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불변단, 조선독립군사령부, 암살단 등 여러 단체에서 주목되는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반 국민들이나 전문가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박문용 선생 관련 추모나 기념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있는지? 아니면 후손의 입장에서 왜 이처럼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이 별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 특히 박문용 선생의 고향인 보성군 등의 동향은 어떤지 궁금했다. 박문용과 같이 활동한 한훈(한우석) 은 대전 · 충남지역의 유명 독립운동가로 지역 사회에서 널리 조명, 현창하고 있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이에 대해 박이사는 할아버지가 출옥 후 일찍 돌아가시고(1929년), 아버 지마저 자신이 여덟살 때(1961년) 돌아가셔서 너무 어렵게 살아가느라고,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이나 현창사업 등에 눈돌릴 여력이 없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저희 할아버님이 러시아에서 돌연 한국에 돌아오신 것은, 1910년 일본 의 조국 강제병합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처신을 고민하던 중에, 진원 박씨 문중의 정신적 지주로써 자존심이던, 11대조 박광전(朴光前) 할아버님의 영 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1대조께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호남지역 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셨지요. 아마 그 때문에 항일의 길을 결심하시고, 1911년 전남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 고향땅에 돌아오셔서 잃어버린 조국, 자신의 역할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신 것 같습니다.” 조부 박문용은 전남 보성 출신으로  본관이 진원(珍原, 전남 장성군 진 원면), 어릴 때 유교 경전에 통달할  정도로 비범했다. 9세 때 서울로 가 서 교육을 받고 러시아에서 수학했 다. 러시아어 · 중국어 · 일본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했다. 보성군 겸백면장 으로 재직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식 민지 통치자금을 독립운동 자금으 로 전용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 며 박환(朴桓)이란 이명을 썼다.  1919년 중국 톈진(天津)에서 불변 단에 가입하고, 임시정부의 국내특 파원으로 제2차 만세시위운동을 추 진했다. 이 해 10월 말 발표된 제2 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 30인중 1인 으로 참가했다. 1920년 4월 조선독 립군사령부 결성에 참여했다. 조선 총독 등 고위 관리들을 처단하려 했 으나, 이 해에 동지 한훈(韓焄, 본명  韓禹錫)과 함께 붙잡혔다. 소위 ‘암 살단 사건’으로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았 다. 출옥 후 얼마되지 않은 1929년  옥고의 여독으로 서거하였다. 정부 는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 을 추서하였다. 박문용 재판 판결문(1921년) 박문용 훈장증(19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