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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3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어린 시절 시가와 문장에 능해 1879년 10월 18일(음력) 전북 임실군 남면 국평리 호전동(狐田洞)에서 부친 전서일(全瑞 一)과 경주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천안이며 원래 이름은 기홍(基泓), 아명은 종 엽(鍾葉), 자는 수용(垂鏞)이다. 해산(海山)은 후일 스스로 지은 호인데, 바다와 산을 누비 는 의병장이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주를 지녔으며, 학 문과 재주가 뛰어난 데다 문장에 능해서 인 근에서는 수재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서예 에도 능통하여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다. 부 친이 가산(家産)을 기울여 아들 훈육을 업으 로 삼았다. 특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등 역사를 좋아했다. 당시 대한제국의 상황 을 중국의 전국시대와 비슷하다고 인식했 다. 한국의 황제는 이름만 있을 뿐이고, 친일 관료들은 일제에 아부하며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일신의 영달에 급급하다고 개탄하였 다. 또한 일본이 통감부(統監府)를 설치한 후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일본인을 한국의 관리로 대거 임용하는 등 내정간섭 상황이 결국에는 국권을 강탈하려는 것으로 판단하 였다. 핵심공적 1906년 창의동맹단 참모로  본격적 의병대열에 참가한  뒤, 1908~1909년 호남지 역 의병대장으로 일본 군경 과 70여 차례나 싸웠다. 열악한 조건에서 호남의병 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했으 나,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순국했다. ■ 건국훈장 대통령장 전해산(全海山) 의병장 한말 호남의병의 정신적 지주 체포돼 교수형 순국 의병대장으로 일본 군경과 70여 차례 전투 주요약력 ● 1879년 10월 18일 전북 임실 출생  ● 1906년 태인의병 참여  ● 1908년 이석용의 호남창의소 의병 참여, 남원 사 촌전투 전개, 대동창의단 결성, 불갑산 · 석문산 · 고 막원 등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  ● 1909년 광주 대치전투 · 자은동 전투, 영광 오동치 전투, 호남동의단 결성 ● 1910년 7월 18일 대구감옥에서 순국 “사람이란 어차피 한 번 죽고 마는 것이니 왜놈과  가까이해서 죽게 될 진데, 어찌 의병에 충실하다 죽 어서 끝내 좋은 이름을 차지하는 것만 하겠느냐.”  - 전해산 『진중일기』(1908) 중에서 -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