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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1930~40년대 일제의 조선인 정책과 재만 조선인의 동향 41 립의 선봉대였다. 만주국에서는 ‘개척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토성을 쌓았으며, 이주민들은 이 곳에서 감옥과도 같은 생활을 영위하였다. 경제공동 체의 완성을 통해 전시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던 만주 국은 이른 바 ‘오족협화(五族協和)’를 내세워 이주한 인들을 통제하였다. 통제와 감시의 선결 조건은 강 제성이었다. 강제 이주된 한인들은 해방과 동시에 정착과 귀환의 갈림길에서 고민하였다. 오늘날 연변 자치주 안도현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대부 분은 만주국 강제이주 정책의 산물이었다. 고단한 이주를 강요당했던 한인들의 상당수는 해 방 후 귀환하지 못한 채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公 民)이자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대인의 이주사, 중국의 화교와 같은 한 교(韓僑) 위치를 재정립하기 위해서 이제 한반도의 우리들이 그들을 정당하게 소환할 때이다. 필자 김주용 동국대학교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 중국 연변대학 민족연구원 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원광대학교 한중관계 연 구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디아스포라(이주, 이산), 밀정(스파이), 제노사이드(대학살)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 요  저서로 『일제의 간도 경제침략과 한인사회』(2008), 『만주지역 친일단체』(2014), 『역사를 따라 걷다』 1, 2, 3(2013~2016), 『한국독립운동과 만주』(2018), 『재만조선 인  통제』3(2022) 등이 있다.  조선혁명군 독립군 사령관 양세봉 (1896~1934)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경위려 대원들.  동북항일연군에는 많은 한인들이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