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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1930~40년대 일제의 조선인 정책과 재만 조선인의 동향 37 확산을 돕는 촉매제였다.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은 이주 한인에 게는 식민 지배를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 전으로 기대되는 곳이었지만, 일제에게 는 대륙경영의 새로운 시험무대였다. 절 대 약자의 위치에 놓인 이주 한인들은 처 절한 생존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만주국 건국 전 한인의 만주 이주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초기 이주는 조 선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따른 생활의 곤 궁에서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하나는 1910년 전후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식민지 경 제재편을 통한 박탈감과 착취에서 벗어나려는 데 그 원인이 있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처럼 일제의 대한 제국 침탈은 만주로의 한인이주를 가속화 시켰다. ‘만주국’ 건국과 한인의 집단 이주 1931년 9월 18일에 일어난 ‘만주사변(일명 9 · 18 사변)’은 제국 일본이 대륙침략을 본격적으로 실행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이듬해 허수아비국가 ‘만 주국(滿洲國)’이 세워졌으며, 14년간 제국 일본이 통 치하였다. 오늘날 중국이 9월 18일을 국치일로 기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주국 건국 이후 한인 이 주는 자율이라는 무대에서 타율이라는 무대로의 이 전을 뜻한다. 관동군의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만주 국은 건국이념을 협화로 설정하였으며, 그 반대세력 에 대한 철저한 탄압의 기술을 선보였다. 이른바 치 안숙정은 역으로 ‘안전농촌’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만주사변, 만주국 성립 과정에서 파생된 안전농촌 의 설립은 한인에게는 강제성의 또 다른 울타리이기도 하였다. 안전농촌을 안전하게 세운 일제로서는 ‘치안 의 담보’와 수탈의 가속화를 함께 추진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이주 한인이 있었다. 한국근현대사에서 강제이주’는 주로 1937년 10월 연해주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의 한인이주를 가리 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제이주’ 연구도 이 지역 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전 세계 한민 족(조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700여만 명이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원형은 불 과 1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 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 중국 공민으로 살아가는 조 선족들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이주공동체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들 이 강제 이주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만주국 성립으로 일본인 이민이 급증하리라는 예 조선인들의 만주이주 행렬(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