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page

순국 특별 초대석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종찬 광복회 회장 16 2023년 8월 혔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독립이 선언되고, 그 직후 국내는 물론, 러시아 · 중국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지 요. 결국 대한민국임시정부가 4월에 중국 상해에 세 워져 독립운동을 주도했지요. 사실을 분명히 정리해 야 정확한 역사 해석이 가능합니다. 일단 ‘독립을 선 언’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국은 1776년 7 월 4일 13개 주(州) 대표들이 모여 독립을 선언하는 데, 이들은 당시 국제열강들의 승인을 받은 것이 아 닙니다. 미합중국의 성립 선언이 아닌, ‘독립선언’이 지요. 영국과 프랑스 등에게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 정받은 것은 1783년 9월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미 국은 1776년 독립선언일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지 요. 이날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것으로 평가 하는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도 1919년 3 · 1독립선언 이 후 임시정부를 세웠다고 했지, ‘건국’을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면 단군(檀君)이 기 원전 2,333년에 단군조선(고조선)을 ‘건국’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 이승만 정부 때 단기(檀紀 ) 연 호를 서기와 함께 사용했지요. 이승만 전 대통령도 1948년 ‘건국’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기원을 기미년(1919년)부터 기산했지요.” 그러나 현재 소위 ‘뉴라이트’계열 인사들은 김구는 1919년 건국설, 이승만은 1948년 건국설, 이렇게 너 무 대립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이회장은 계 속해서 차분한 목소리로 힘주어 논리를 폈다. “우리 국민들도 3 · 1운동이후 인식이 바뀌었습니 다. 고종(광무황제)이 죽고나서 이제 더 이상 왕정(王 政)은 안된다, 민주공화제를 이야기하고,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야된다, ‘혁명적 변혁’으로 평가할 수 있 는 그러한 사실을 이야기했지요. 현 윤석열 대통령 도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지, 1948년을 ‘건 국’으로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이인호 전 서울대 교수가 1948년 건국 설을 내세우며 1919년 ‘건국설’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이회장은 이교수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자신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며 일 부 내용을 오해하고 있다고 적극 대응하기도 했다. 김구 · 김규식 · 이시영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1945년 11 월 5일 환국을 위해 중국의 충칭(重慶)을 떠나 상하이 강만비행장 에 도착하던 때의 모습. 가운데 김구 주석 앞 태극기를 든 소년이  어릴 때 이종찬 회장이다(연합뉴스 제공). 이종찬 회장이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2023.6.22.,  연 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