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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재일한인 독립운동사의 신조명 ① 79 재일조선인 민족운동 속 김천해의 활동 1) 재일조선인 노동운동가 김천해 1921년 도쿄에 간 김천해는 선진적인 인사들과 의 접촉으로 자연스럽게 노동운동 단체에 관계하게 되었다. 그는 도쿄조선노동동맹회 결성에 참가했다. 재일조선인 노동운동가로서의 모습을 여기에서 찾 아볼 수 있다. 도쿄조선노동동맹회 조직은 결성 당 시에 강령을 다음과 같이 내걸었다. ① 우리들은 조 선 노동운동을 국제적으로 진출시키고 세계무산계 급의 절대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② 우리들은 재일 조선노동자의 계급의식의 촉진과 직업의 안정을 도 모한다. 이와 함께 실행위원으로 유진걸(柳震杰), 손봉원 (孫奉元), 김상호(金相鎬), 김종범(金鍾範), 천종규(千 鍾奎), 마명(馬鳴), 남윤구(南潤九), 강철(姜徹), 김천해 등을 선임했다. 이때 김천해는 사무실에서 먹고 자 면서 활동했다. 1922년 시기 도쿄조선노동동맹회의 간부로 활동 하던 김천해는 백무, 이헌 등과의 교제로 공산주의 사상을 갖게 되었다. 1923년 시기 나가노현(長野縣) 에서 임금 미지불로 일어난 노동자의 투쟁에 참가 했 다. 이후 1924년 활동 지역을 옮겨 가나가와(神奈川) 로 갔다. 당시 가나가와에서 가장 많은 수의 조선인 노동자가 거주했던 곳인 요코하마로 이주하여 관련 활동에 참가했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1925년 7월 11일 조선노동동 지회, 애호회, 공조회, 조선인동지회의 대표와 유지 가 모여 조직의 통일을 도모하고, 새롭게 조선합동 노동조합을 조직했다. 1926년 12월 가나가와현 마 츠다초(松田町)에서 열린 ‘내선(內鮮)융화연설회’ 방 해를 지도했다. 김천해는 이 때 처음으로 투옥되었 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그는 재일조선인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징역 3개월을 언도를 받고, 1927년 4월 13일 출옥했다. 김천해의 재일조선인 노동운동가로서 주목되는 모습은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서이다. 이 단체는 초기의 상호부조와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에 서 노동자계급의 성장과 함께 계급해방을 내건 단체 로 발전했다. 일본지역의 전국조직으로 재일본조선 노동총동맹이 등장했다.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1920년대 오사카 재일조선인들의 조선인 학살 항의등 집회장소 로 쓰였던 중앙공회당(독립기념관 제공) 김지섭 · 박열 · 이강훈 등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도쿄 도요 타 마형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