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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023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운동과 무오년 법정사(法井寺) 항일운동과 더불어 제주도 3대 항일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는 우리 해녀들이 목숨을 바쳐 채취한 전복 이며 미역 등 각종 해산물을 헐값으로 빼앗고 각종 세금을 부과해 못살게 굴었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이는 김옥련 지사가 96살 되던 해인 2003년 10월 22일치 《경 남 여성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좀 더 들어 보 자 “우리가 들고 일어났던 것은 해녀어업조합에서 은밀하게 브로커들과 결탁해 지정 상인을 정하고 아직 바다 속에서 캐지도 않은 해산물을 결탁상인 들에게 내주었는데 죽도록 고생해 캐낸 해산물의 매수가격은 형편없었기 때문이지.” 해녀들에 대한 일본 관헌들의 가혹한 대우와 해 녀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발족한 제주도 해녀조합 의 어용화 폐단은 1931년 급기야 하도리에서 거세 게 폭발하였고, 1932년 1월 세화장날을 기해 대규 모 항일운동과 연결된 죽음을 불사한 항일투 쟁으 로 이어졌다. 김옥련 지사는 당시 감옥생활을 이렇게 증언했 다. “취조과정에서 소 가죽 채찍으로 맞고, 두 팔을 뒤로 뒤틀리는 고문을 당했으며, 나무봉 위에 무릎 을 꿇리고 짓눌리는 등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고문 을 받았다.” 고 증언했다. 김옥련 지사는 광복 직후 제주를 떠나 부산 영도 대교동에 자리를 잡고 3남 매를 억척스럽게 키워냈다. 한때는 땔감도 없어 부 둣가에 떠내려오는 나뭇조각을 건져 올려 불을 지 필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지만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억척스런 삶을 살아내며 3남매를 모 두 훌륭히 키워냈다.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알아 추운 날 무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던 몸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 어린아이 젖 제주 해녀 시위 기사 (《동아일보》 193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