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page

60 2023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향기나는 삶 이야기 었던 밑바탕이 되었을 것으 로 생각합니다.” “어머님 고생은 말로 못 합니다. 제가 네 살 때 큰집 으로 입양되었습니다만, 친 어머니 이상으로 저를 아끼 셨고, 큰 희생을 치르셨어 요. 평소에 아버님 얘기는 별로 하지 않으셨습니다만, 1998년 6월 아버님이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 어 추모행사를 성대하게 진 행하자 무척 흐뭇해 하셨지 요. 추모행사를 보시며 남편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한이 쌓여서인지 눈 물을 흘리셨어요. 지역사회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겠지요. 사실 아버님은 어 머님과 결혼 한지 몇 년 되지 않아 중국으로 떠나셨거든요. 정말 평소에 쌓 인 한이 그 일로 풀리셨는지, 묘하게도 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이부회장은 자신도 무척 어렵게 컸다면서 양어머니 정여사와 살던 이야 기를 들려주었다. 정여사는 이원대 열사보다 2년 연상이었는데, 홀로 된 뒤 에도 혼자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이부회장 등 식구를 부양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어려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동철 부회장은 초 등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생가를 두고, 10리길 산을 넘는 양어머니집 에서 고생하며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돈이 없어 대구상업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하여 주경야독, 고학생활로 그나마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고교 졸업후 1년만에 서울의 은행에 입사하여 서 울로 어머니를 모실 수 있어 조금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 이런 곤경이 어찌 이동철 부회장 혼자만의 경우였겠는가. 소외된 조선의용대(군) 연구 교육과 기념 · 추모사업 대한민국 정부나 학계에서 조선의용대 · 조선의용군 관련 인물에 대한 관 이동철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부 회장은 1947년 경북 영천 출생으로  대구상업고등학교(현 상원고교)를  졸업하고, 주경야독으로 건국대 · 영 남대 경영대학원과 동국대 최고경 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1967년 국 민은행에 입사하여 2001년 퇴직할  때까지 34년 동안 근무하였다. 이후  이원대열사기념사업회 회장, 대한 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감사, 의 병정신선양회 이사 등 독립운동 관 련 단체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는 ‘순국선열 이원대열사기념사업 회’ 상임이사로 활동하는 한편, 서울 에서 학생 · 청소년들의 기숙사인 정 효학사를 운영하고 있다.  4세 때인 1950년 작은 아버지 이원 대 열사의 양자로 입적되어 어려운  환경에서 양어머니 정호삼 여사의  양육으로 성장하였다.   조인호 이사장 역시 영천 출신으로  영남대학교와 같은 학교 교육대학 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영천의 산 동중 · 영천공고(현 영천전자고등학 교)의 역사교사로 근무하였다. 영 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이원대열사 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냈으며, 『이 원대의 항일투쟁』(1999), 『사진으 로 보는 독립투쟁사-불멸의 민족 혼』(2003), 『영천의 독립운동사』 (2013) 등의 저서를 간행하였다. 현 재 산동학원(산동중 · 영천전자고)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원대열사 망명 및 항일투쟁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