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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3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1922년 8월 남만주 각지에 흩어져 있던 8단(團) 9회(會)의 독립단체가 통합하여 대 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되었다. 그는 1924년 4월 대한통의부 행정위원회에 참여 하였고 6월 21일 대한통의부 비상회의에서 군사위원장과 의용군(독립군) 사령장을 겸임 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 군경과의 수십차 교 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이 무렵 임시정부 봉대를 표방한 참의부 (參議府)가 성립하는 등 내부분열로 일어난 역경을 김동삼·오동진 등 독립군 지도자들과 함꼐 극복하였다. 통의부 의용군 부대가 국 내진공작전을 감행한 지역은 주로 압록강 접 경지역인데, 1923년에 전개한 주요 전투상 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월 5일 평북 창 성군 후평 소재 일본경찰 주재소 습격. 5월 28일 평북 초산군 판면(板面)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습격. 6월 28일 초산군 서면 연담 리 경찰 사살. 8월 평북 강계 회룡동 부근에 서 일본 경찰대 섬멸. 9월 21일 평북 희천군 문명동 경찰주재소 습격 등. 이처럼 대한통의부의 국내진입작전이 활 발했던 것은 신팔균이 뛰어난 통솔력과 희생 정신을 충분히 발휘함으로써 독립군 병사들 을 훈련시키고, 또 직접 전투에 참전하여 그 용맹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제 주구 단체들 일제히 소탕. 일제 사주 중국 지방군경과 교전중 전사 한편 1924년 중반 통의부 의용군(독립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장군은 양세봉(본명 양서 봉)·문학빈·심용준 등과 함께 재만 친일주구 배의 숙청을 목표로 유하, 통화, 집안현 지역 의 일제 거류민회와 보민회를 습격, 소탕작 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해 7월 2일 장군은 서간도 홍경현 왕청 문(旺淸門) 이도구(二道溝) 밀림리(密林里) 산 골짜기에서 통의부 의용군의 야외 군사훈련 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1시경 일본 영사관의 사주를 받은 중국 지방군 300여 명 이 갑자기 기습공격을 가해왔다. 아무런 전 투 준비 없이 훈련만 실시하고 있던 독립군 은 황급히 전열을 갖추어 교전하면서 대원들 을 안전지대로 후퇴시켰다. 그러나 선두에서 지휘하던 장군은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부 하들이 신사령관을 부축하려 하자 이를 완강 히 거부하며 쓰러진 부상병을 먼저 후송토록 명령하고 계속 전투를 지휘했다. 이때 다시 적의 총탄이 장군의 흉부를 관 통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중대장 김하석이 신팔균이 순국한 중국 요녕성 흥경현 왕청문 이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