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page

이달의 순국선열 • 신팔균 장군 55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군복 벗고, 향리에 사립학교 세워 교육구국운동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일본에 강제 로 해산 당하자 황실 경위와 의장대의 성격 을 띤 근위보병대에서 복무하다 1909년 7월 육군 정위로 진급했다. 그러나 이름뿐인 군 대와 날로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보고 울분 을 참지 못하여 부하 장병들을 이끌고 일제 에 대항코자 하였으나 불가항력임을 깨달아 군에서 나왔다. 그 후 선대의 향리인 충북 진 천으로 내려가 청소년의 민족혼을 일깨워주 고 항일애국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사립 보명 학교(普明學校 : 현, 이월초등학교)를 세워 교 육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각 지방의 의병부 대 및 전국 각지의 애국동지들과 긴밀한 연 락을 취하면서 적극적 항일독립운동을 준비 하였다. 1910년대 초 중국 망명, 신흥무관학교 교관, 대한통의부 의용군 사령관 활약 1909년 안희제 · 이원식 · 김사용 · 윤병호 등 80여 명의 동지와 대동(大東)청년당을 조직 하고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활동을 전개하였 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중국 동북지방(만 주)으로 망명하여 동지 규합에 나섰다. 남·북 만주는 물론 중국 베이징(北京) · 시베리아·상 하이 등지를 전전하였다. 신흥무관학교 교관 으로 활동하던 중 1919년 서로군정서가 성 립하자 참여하여 지청천 · 김경천 · 오광선과 함께 독립군 양성에 헌신하였다. 신팔균(앞줄 왼쪽)과 대한제국군 장교들.  앞줄 오른쪽은 신규식 신팔균의 육군무관학교 졸업증서(1903.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