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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안춘생의 항일독립전쟁과 국군 창군 및 호국전쟁 47 하였다. 광복군총사령부가 성립된 후 12월 29일 군 사특파단이 공식 해체되자, 안춘생은 광복군총사령 부 시안판사처에 배치되어 한국광복군 부대 증편 임 무를 수행하였다. 안춘생은 1941년 초 광복군 제1 지대의 간부로 임명되었는데, 지대장 이준식을 포함 한 구성원 9명 모두가 군사특파단 출신이었다. 그는 1942년 4월 지대 개편시 육군 중령으로서 제2지대 제1구대장으로 전보되어 시안(西安)일대에서 활동하 였다. 1945년 8월 일제 패망 당시 한국광복군은 3개 지 대가 있었는데,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확군하여 국내 에 들어가 군대를 건설하고자 건군 준비를 하였다. 건군 작업은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일본군 내 한인 장병들을 접수하여 10월 말까지 중국의 6개 도시에 서 추진되었다. 그 뒤 한국광복군 잠편지대(暫編支隊) 를 편성했는데, 안춘생은 난징 잠편지대 지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1946년 5월 한국광복군 귀국단과 함 께 귀국했다. 광복 후 국군 창군과 호국전쟁에 나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자 미군 제 24군단이 38도선 이남 남한지역 주둔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완료하고, 주한미육군사령부(USAFIK)를 발 족시겼다. 그 후 임시정부 성격의 군정청(USAGIK) 을 수립하였다. 미군정청은 1945년 11월 13일 오늘 날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국방사령부’를 설치하여 국 방에 관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국방사령부는 1946 년 1월 15일 경기도 양주군 태릉(현 육군사관학교 소 재지)에서 장차 육군이 될 ‘남조선국방경비대’(이하 국방경비대)를 창설하고 전국에 걸쳐 8개 연대 편성 한국광복군 제2지대 간부들과 미군 OSS대원들(1945.9.30, 시 안). *앞줄 왼쪽 노태준(제2구대장), 가운데 2지대장 이범석, 그  오른쪽이 안춘생(제1구대장). 한국광복군 지대 활동지역(1943~1945) *출처: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독립군항쟁사』, 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