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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안춘생의 항일독립전쟁과 국군 창군 및 호국전쟁 45 안춘생은 안중근 의사(장군)의 조카 로서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하여 한국광복군 창설 및 독립 전쟁, 광복 후 국군 창설 및 호국전 쟁(6 · 25전쟁)에 주역으로 참여한  분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국군 의 정통성 확립에 빛나는 업적을 세 운 국가유공자로서 그 상징성이 매 우 크다. 안춘생(安椿生, 1912.8.12~2011.1.26) 장군(이하 안춘생)은 안중근 의 사의 5촌 조카(堂侄)이자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의 창설 및 독립전쟁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를 제8기로 졸 업하고 육군 중령으로 임관하여 육군사관학교장(1951.10~1952.11), 제 8보병사단장(1956.7~1958.8), 국방부 차관보를 역임하였다. 1961년 육 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 및 국군 창설에 크게 이바지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1963, 건국훈장 독립장)이다. 이하에서 그의 독립전쟁과 대한민국 국군 창설 참여, 6 · 25전쟁간 육 사 재개교 과정, 한국군에서의 활약과 그 의미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안춘생의 성장 과정 1912년 8월 12일 황해도 벽성군(碧城郡) 금산면(錦山面) 냉정리 (冷井里)(현 황해남도 해주시 작천리)에서 아버지 안장근(安莊根, 1886~1956.5.20)과 어머니 청송 심씨(?~1929.3.20)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당숙인 안중근의 하얼빈의거로 인해 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다. 1918년 부모를 따라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헤 이룽장성(黑龍江省) 해륜중학(海倫中學)을 졸업하였다. 항일독립전쟁의 길로 나서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의 상하이 홍 커우공원의거(1932.4.29) 후인 1933년 5월 김구-장제스(蔣介石) 회담에 서 김구의 요청에 장제스가 협력을 약속함에 따라 중국중앙육군군관학 교 뤄양(洛陽) 분교에 ‘한인특별반’이 신설되었고, 김구가 만주에서 지청 천(池靑天), 이범석, 오광선, 김창환 등을 교관으로 초빙하고 제1차로 한 국 청년 100명을 모집하여 특무대독립군 장교를 양성하게 되었다. 또한 김구는 난징(南京) 군관학교에도 한인애국단 요원을 입교시켜 특무대 독립군을 양성해 나갔다. 이 시기 안춘생은 일본의 만주(중국 동북지방) 침략이 본격화되자 ‘조 국 독립은 오직 항일무장투쟁으로써만 달성이 가능하다’는 독립전쟁 의 뜻을 품고, 중국 관내로 들어가 1933년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 안중근 의사의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