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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화강 이준식의 독립운동과 국군 활약 41 장 백선엽을 비롯해 다수의 중령을 대령으로 진급 시켰다. 이때 특별고급장교 후보생으로 교육을 받고 있던 이준식 역시 경력을 인정받아 대령으로 임관 하였다(《동아일보》 1948년 12월 31일, ‘陸軍八中領 昇進 민간경력자 등용’). 당시 국방부 참모총장이었 던 채병덕 준장은 국군 간부 진용의 강화를 도모하 기 위해 민간인 중에서 군사 경력자를 등용하기 위 한 조치라고 발표하였다. 운남 군관학교에서 군사교 육을 받고 이후 항일 투쟁을 전개하면서 다양한 군 사 경험을 갖고 있던 화강 이준식의 군사 경력은 대 한민국 국군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놓칠 수 없는 귀 중한 인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강 이준식에게 있어 이 역시 쉬운 결정 은 아니었다. 우선 직전까지 독립군을 탄압하던 일 본군 출신과 함께 군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그 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처럼 민간인 중에서 군 사경력자는 특별반에서 단기 교육을 받고 기용하였 다. 1947년부터 이러한 취지하에 특별반이 운용되 었고, 1948년에는 육사 8기와 동기로 임관하였다. 특별 1반의 경우 11명이었지만, 특별 2반은 160명 이 입교하여 145명이 임관하였고, 특별 3반은 190 명이 입교하여 181명이 임관하였다. 특별 4반은 1차 로 148명이 임관 한 이후, 곧 이어 2차로 99명이 임 관하였다. 이들 중 에는 일본군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한국광복군 대원 앨범에 실린 이준식(오른쪽부터 이청천 총사령관, 이범석  참모장, 이준식 참모처장, 왕영생[중국인] 참의 순) 한국광복군 제1지대 본부대원들(사각형 표시 인물 이 이준식, 중국 충칭) 한국광복군 제1지대 대원들과 함께(중국 산서성 [山西省]) 한국광복군 휘장(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