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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23년 7월 Special Theme  6 · 25전쟁 정전70주년 특집 독립군 · 광복군에서 국군으로 활약한 인물들 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다. 중국군에서 다양 한 직책과 경력을 쌓은 김홍일은 1939년 중국군 소 장(少將)으로 진급하였다. 장군 진급 후 김홍일은 상 고현 전투에서 사단장으로서 대승을 거두었다. 장개 석 총통의 인정을 받은 김홍일은 중국 최고의 군사 교육기관인 육군대학에 들어가 2년간 고등군사교육 을 받았다. 한국인 중에서 중국 육군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김홍일과 최용덕, 박시창 단 세 명뿐이다. 이봉창 · 윤봉길 의사 의거에 폭탄제공 김홍일은 중국군 장교시절 신분을 숨겨가며 독립 운동을 지원했다. 임시정부 김구의 부탁을 받고 이 봉창과 윤봉길 의사에게 폭탄을 제공해 준 사람이 바로 김홍일이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일본 동경(東京)에서 일왕 히로히토가 탄 마차에 수 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 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기념행사를 할 때 귀빈석에 도시락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상해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일본공사 시게미쓰 등 일 본측 요인들 10여명을 살상하였다. 그때 김홍일은 중국군 대령으로 왕일서(王逸曙)라는 이름으로 활동 했다. 조선의용대 창설 참여 및 한국광복군 참모장 활약 김홍일은 조선의용대 창설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조직한 한국광복군에도 참여하였다. 조선의용대는 1938년 10월 조선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한 의열 단계 좌파진영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창설된 것이 고,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가 창설한 정규 국군이다. 김홍일은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분교에 입교한 조선민족혁명당 출신 청년들을 가르치는 교관을 지 냈는데, 이 인연으로 김원봉이 주도한 조선의용대 장개석 총통과 김홍일 장군(뒤쪽) 윤봉길 의사 의거시 폭탄을 제조한 중국인 향차도(向次濤, 왼쪽) 와 폭탄을 전달한 김홍일(매헌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