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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촌 개척자들의 일상 생활문화는 사진 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번에는 문익환 목 사의 모친인 김신묵 여사의 회고로 그 실 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여사는 함경북도 회령군 용흥면 용성리에서 감하규와 김윤 하 부부의 3남 6녀 중 넷째였다. 1895년 4월 5일에 태어나 5살 때 부걸라재(북간 도 명동촌의 옛 이름)로 왔다. 16살 때 문 재린과 혼인하였고, 1931년까지 명동촌 에 살다가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여 해방 때까지 살았다. 해방 후 남한으로 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김약연·김하 규·문병규·남종구·윤재옥 다섯 가문이 힘 을 합쳐 이상향 마을을 개척하고, 동쪽을 밝힌다는 뜻으로 ‘명동촌’이라 이름하였다. 글  김시덕(본지 편집위원, 을지대학교 교수) 북간도 명동촌 개척자들의 독특한 일상생활 기독교신앙 바탕 공동체 생활로  어려움 극복 북간도 명동촌의 독특한 일상생활 116 2023년 7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자랑스런 우리 것들 1899년 벽두,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 부걸라재로 1899년 2월 18일 함경도 회령 출신 규암(圭巖) 김약연(金躍淵, 1868~1942) 선생의 집안 식구 31명, 김해김씨 소암(小岩) 김하 규(金河奎, ?~?) 선생의 집안 식구 63명, 종성의 남평문씨 성재(省 薺) 문병규(文秉奎, 1834~1900) 선생의 집안 식구 40명, 규암의 스승인 도천(道川) 남종구(南宗九, ?~?) 선생의 집안 식구 7명 등 25 세대 142명은 이른 새벽 회령에 서 출발하여 부걸라재에 이른다. 부걸라재란 우리가 북간도 독립 운동의 기지로 알고 있는 명동촌 사자산에서 본 명동촌, 장재촌(규암독립사상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