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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 그 현장을 가다 ② 107 로 쓰며 투쟁했다. 그들은 금릉대학 입학 예비과 정인 입오생(入伍生) 과정에 들 어갔다. 박태원은 김원봉의 구술 을 듣고 집필한 『약산과 의열단』 (1947)에 김원봉이 이여성 · 김약 수와 함께 금릉대학에 다녔다고 썼다. 나도 2005년 실천문학사판 『약산 김원봉』에 그대로 썼다. 그 후, 한 연구자에 의해 학적 명단에 서 없음이 밝혀졌다. 그래서 2019 년 한길사판 『민족혁명가 김원 봉』에는 입오생 과정을 밟았다고 썼다. 금릉대학 입학 직전 3 · 1운동이 발발했다. 세 사람은 독립투쟁 투 신을 결심하고 입학을 포기했다. 김원봉은 황상규의 명을 받아 육 탄혈전을 감행할 동지들을 구하 려 신흥무관학교로 갔다. 김약수 와 이여성은 육탄혈전에 반대하 며 다른 길을 걸었고, 김원봉은 의 열단 투쟁으로 명성을 떨쳤다. 셋 은 출생지가 경상도인데 광복 후 월북해 북한 정부의 요직에 있다 가 숙청당했다. 1935년 독립운동 진영에서 백 범 김구와 맞먹는 위상에 오른 김 원봉은 난징에서 민족혁명당을 조직했다. 결성식을 모교인 금릉 대학 예당에서 열었다. 백범이 장개석 만난 중앙반점과 회청교 마을 두번째로 찾은 곳은 윤봉길 의 사 의거 후인 1932년 5월, 임정 의 김구 주석이 국민당 정부 장개 석과 회담한 중앙반점(中央飯店) 과 그 뒤에 있는 총통부였다. 두 건물은 장개석 정부의 유적인데 도 중국 정부가 잘 보존하고 있었 다. 총통부는 우리나라 청와대처 럼 사뭇 넓지만 개방돼 있어서 들 어갈 수 있고, 중앙반점도 복도에 게시된 역사적 기념사진들을 볼 수 있다. 백범은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일 본 밀정들을 피해 가흥(嘉興)에서 ➊ 여운형과 김원봉 · 김약수 · 이여성이 유학한 금릉대학 캠펴스(2018년 겨울, 이하 사 진은 이원규 촬영) ➋ 1935년 민족혁명당 결성식이 열린 금릉대학 예당 ➊ 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