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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南京)은 장강(長江, 양자강)을  끼고 있는 도시이다. 수운의 이점 이 있어서 예로부터 강남의 중심 구실을 했고, 삼국시대에 손권(孫 權)이 오(吳)나라를 세운 이래 10개 의 왕조가 왕도로 삼은 곳이다. 근 대에 와서도 태평천국의 봉기군이  청나라 정규군과 서구열강 군대에  대항해 싸울 때 거점으로 삼았다.  한때 중화민국의 임시수도였으며,  일본군에 의해 양민 30만 여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독립투쟁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백범(白 凡) 김구(金九) 선생이 중국의 장개 석(蔣介石) 총통과 회담하여 협조 를 끌어낸 곳도 난징이었다. 난징 은 임시정부와 의열단, 민족혁명당  애국지사들이 분투한 현장,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슬픔과 한 을 안고 있는 도시였다.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 그 현장을 가다 ② 임시정부 · 민족혁 명당 활동지 난징 글  이원규(소설가) 임시정부 인사들과 민족혁명당 자취 남은 난징  여운형 유학 금릉대학은 옛날 그대로 의열단 본부, 김원봉 숙소 호가화원 복원 강녕진 조선혁명간부학교 건물 퇴락   106 2023년 7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여운형과 김원봉이 유학한 금릉 대학 캠퍼스 나는 난징에 세번 갔다. 1995 년『스포츠서울』에 독립운동 현 장 르포를 1년간 연재하며 가고, 2000년『대한매일신문』의 르포 의뢰를 받아 가고, 2018년 겨울 『서울신문』임시정부 100년 특집 팀과 함께 갔다. 난징의 옛 지명은 금릉(金陵)이 다. 앞의 두 번도 그랬지만 2018 년 겨울에도 난징대학 구내에 있 는 옛 금릉대학 캠펴스부터 먼저 찾아갔다. 100여 년 전의 건물 3 동과 강당 격인 예당(禮堂)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푸르른 잔 디밭을 걸으며 100년 전 이곳에 서 조국 독립을 위해 고심한 독립 투사들을 떠올렸다. 몽양 여운형(呂運亨) 선생은 1913년 신흥무관학교(그때 정식 명칭은 신흥학교였다)를 찾아갔 다가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서 그 의 희망처럼 정치적 외교적 투쟁 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 경 성으로 돌아왔다. 언더우드 목사 의 추천장을 받아들고 남경으로 가서 1914년 금릉대학 영문과에 입학하고 1917년 7월 졸업했다. 다음 해인 1918년 가을, 세 젊 은이가 학교에 도착했다. 27세 김 약수(金若水), 21세 김원봉(金元 鳳), 18세 이여성(李如星)이었다. 9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의기 투합한 애국청년들로 본명이 김 약수는 김두전(金枓栓), 이여성은 이명건(李命鍵)이었다. 그들은 김 원봉의 고모부이자 독립투사인 백민(白民) 황상규(黃尙奎)가 지어 준 대로 물과 같다는 ‘약수(若水), 산과 같다는 ‘약산(若山), 별과 같 다는 뜻으로 ’여성(如星)‘을 가명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