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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3년 7월 Column   편집위원 컬럼 작은 소리 큰 울림  오늘날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남북 관계의 수많은 문제들이 대부분 6 · 25전쟁으로부터 직·간접적 으로 연유한 것들이다. 이산가족문제, 국군포로문제, 서해북방한계선 문제, 한미동맹체제, 한반도 평화체제 모 색 등이 모두 6 · 25전쟁의 유산이다. 먼저 6 · 25전쟁을 바로 알아야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6 · 25전쟁사에서 반성과 교훈의 요소를 잘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6 · 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돌아보며 6 · 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 이제 ‘차가운 평화’의 시대를 넘어서 평화체제 구축해야 글ㅣ김대중(본지 편집위원, 부천시박물관장) 전쟁의 총성을 멈추게 한 정전협정문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이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날 밤 10시를 기해 전쟁 의 포화가 멈췄다. 6 · 25전쟁으로 희생된 인명은 4,466,625명에 이른다. 끔찍한 전쟁이었다. 전쟁 의 총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휴전(休戰)’ 또는 ‘정전(停戰)’으로 표현되 듯이, 잠시 중단되어 쉬고 있다. 그 잠시가 어느덧 70년의 세월이다. 전쟁의 유산인 이산가족 · 납북 자 · 국군포로 문제도 미완으로 남아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구축 역시 아직 결실을 맺지 못 했다. 오히려 북한의 핵 개발 등으로 긴장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정전협 정의 성격과 의미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차가운 평화 Cold Peace’의 시대를 넘어서기를 소망한 다. 전쟁이 끝나야 평화가 올 것이기 때문에… 휴전회담, ‘또 다른 전쟁 휴전협상은 1951년 6월 23일 유엔주재 소련 대표 말리크(Yakov A. Malik)가 ‘평화의 가치’라는 유엔의 라디오방송에서 한국에서의 휴전을 제의하였다. 중국과 북한이 이를 수락하고, 뒤이어 미 국이 받아들임으로써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이 개성에서 열렸다. 핵심내용은 군사분계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가. 정전을 감독할 기구는 어떻게 구성하고, 포로는 언제 어떻게 송환할 것인가.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은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