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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3년 5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시간의 사격전을 벌여 적을 대파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대대적 반격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연합 의병부대의 광주 탈 환작전은 보류되었다. 그런데 예상대로 11월 25일 야마다(山田)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 ‘토벌대’가 그의 의병 부대를 공격해왔다. 이에 의병부대는 추월산 고지에서 포까지 쏘며 적과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러나 의병부대는 우수한 화력을 지닌 일본군의 반격으로 15명의 병력을 상실 하고, 포와 화승총을 빼앗기는 등 큰 피해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의 의병부대가 주로 전투역량을 재충전하기 위한 군자금 조달 및 군수품 모집 · 징발 활동을 벌이게 된 것도 바 로 이 때문이었다. 양진여 의병부대는 침략에 앞장선 일본 인 식민관리에 대한 처단 투쟁도 벌였다. 의 병부대는 1908년 11월 14일 광주 오치동에 서 일본인 우체부 에토오(江藤喜次郞)를 처단 하였다. 그리고 11월 24일에는 광주 대치산 에서 추월산으로 이동하는 중에 만난 일본 인 세무서원을 사살하기도 했다. 그의 의병 부대가 일본인 우체부와 세무서원을 처단 한 것은 이들이 경제침탈의 앞잡이로 민중 의 원성을 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세무서 원뿐만 아니라, 우체부도 조세 징수와 운반 임무를 맡고 있었던 탓에 의병부대의 표적 이 되었다. 따라서 일본인 침탈관리의 처단 활동은 감정적 차원의 보복이 아니라 일제 의 경제침탈에 대한 민족적 응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 주요활동으로 양진여 의병부대는 군자금 및 군수품 모집 활동을 전개했다. 의 병부대는 거병 초기부터 군자금 및 군수품 수합 활동이 있었지만, 구체적 기록은 1908 년 7월 5일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날부 터 양진여는 양동걸(이복 아우)·김성국·김동 수 등 의병부대원을 거느리고 광주·담양군 일대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 수합 활동에 나 선 것이다. 8월 23일과 24일에도 의병대원을 인솔하여 군자금 징수 활동을 하였다. 즉 23 일에는 광주군 갑마보면 복룡촌, 24일에는 광주군 하대곡면 주부동에서 군자금을 징수 했다. 같은 해 12월 25일에는 광주군 갑마보 면 면장 집에서 짚신과 백목(白木; 면포) 등을 거두었다. 일본군 임시한국파견대, ‘남한대토벌작전’ 으로 그물로 사냥하듯 의병들 추적 1909년에도 양진여 의병부대의 군자금 및 일본군의 소위 ‘남한 대토벌작전’으로 체포된 호남의병장들(1909년).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양진여 의병장(동그라미). 오른쪽은 심남일 의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