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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23년 5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평민 출신으로 광주 대치산에서 의병활동 시작, 아들도 의병장돼 양진여 의병장은 1860년 5월 11일 전남 광산군 서창면 벽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 호는 서암(瑞菴)이다. 성장 과정은 알려 져 있지 않지만, 손자 양일룡의 증언에 따르 면 전남 장성군 불태산(佛台山) 소재 정이암 에서 수학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거병할 때 격문을 살포하여 의병을 모았다는 기록으 로 보아 글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 1905년 을사늑약(을사5조약) 이후 가중되 는 일제의 침략 만행과 ‘정미7조약’ 부수 각 서에 따른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해산 사태 로 크게 각성하게 되었다. 특히 광주진위대 병사로 복무하던 아들 양상기(梁相基)가 하 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원하지도 않던 광 주경찰서 순사로 발령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 랬다. 이에 의병 봉기를 결심한 뒤 전남 광주· 담양·장성 일원에 격문을 뿌려 의병 동지들 을 모았다. 그의 거의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1907년 10월 경 3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 여 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광주와 담양 경계 핵심공적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 대해산 후 전라남도 광주· 담양·장성 일대에서 모병 하여 의병부대를 편성하였 다. 이 해 10월부터 1909 년 중반까지 전남지방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주요약력 ● 1860년 5월 11일 전남 광산군(현재 광주시) 출생  ● 1907년 10월 광주에서 의병부대 조직, 봉기 ● 1907년 11월~ 1909년 중반 광주·담양·장성  일대에서 의병 지휘, 일본군 상대로 의병전쟁 ● 1910년 5월 30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 ■ 건국훈장 독립장 양진여(梁振汝) 의병장 치열한 항일투쟁 벌인 호남 최후 의병장 부자 의병장으로 명성, 아들 양상기도 두달 뒤 순국 “무릇 왜적은 우리의 하늘에 사무치는 원수인 것이 다. 왜적의 머리는 무슨 쇳덩이기에 우리 칼날이 들 어가지 않으며, 왜적의 몸은 무슨 돌덩이기에 우리 의 총탄이 박히지 않겠는가. 오늘 행하지 못하면 내 일 행할 것이요, 금년에 죽이지 못하면 내년에는 기 필코 죽이기로 맹서하였다.”   - 같은 시기 활동한 어느 호남 의병장의 격문 중에 -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