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page

46 2023년 5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정통 유학자 집안의 후손. “성현이 세상을 구제한 뜻을 모르면 가짜 선비다”주장 김창숙은 1879년 7월 10일(음력: 양력으 로는 8월 27일)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사 월리(속칭 사도실 마을)에서 부친 김호림(金 頀林)과 모친 인동(仁同) 장씨 사이에서 태어 났다. 본관은 의성으로, 조선 선조때의 명신 동강(東岡) 김우옹의 13대 종손이다. 뒷날 호 를 심산이라 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과 통 치가 강화되는 가운데 자조(自嘲)의 심정을 이기지 못해 한 때 ‘우(愚)’로 별명을 짓고 세 상을 조소하기도 했다. 또 일본 경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받은 끝에 하체가 마비되고 거 동이 부자유스러워져 남들이 벽옹(앉은뱅이 노인)이라 부르자 스스로 '벽옹(躄 翁)'이라 하 였다. 엄격한 양친으로부터 엄한 훈도를 받으며 자란 그는 재주가 뛰어났으나,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성품 탓으로 어릴 때는 성리학이나 학문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16세 때 부친으로부터 노비해방과 계급타파 등 선각자적 가르침을 받고 이를 깊이 가슴 에 새기게 되었다. 또 동리 서당에서 글을 배 웠으나, 20세(1898년) 전후에는 곽종석(郭鍾 錫) 및 이승희(李承熙), 장석영(張錫英) 등 한 주(寒洲)학파 계열 영남 대유학자들의 문하를 핵심공적 1919년 파리장서(巴里長書) 를 휴대하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파리강화회의에 제 출토록 했으며,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26년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의거를 성사시켰 다. 국내로 압송 · 투옥된 뒤에 도 옥중투쟁을 지속하였다.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김창숙(金昌淑) 선생 고문으로 불구가 되자 스스로 ‘벽옹’으로 불러 대쪽 선비의 전형,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투사 주요약력 ● 1879년 7월 10일(양력 8.27) 경상북도 성주군 출생 ● 1908년 대한협회 성주지회 설립  ● 1910년 향리에 성명학교 설립, 계몽운동 전개 ● 1919년 유림의 파리장서 독립운동, 임시의정원 의원  ● 1926년 나석주 의사 동양척식회사 투탄의거 성사 ● 1946년 성균관대학 설립 및 1950년대 반독재투쟁 ● 1962년 5월 10일 서울 중앙의료원에서 타계 “나는 대한 사람으로 일본 법률을 부인한다.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대의에 모순되는  일이다.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하게 살려고 하 는 것은 치욕이다. 결코 내 지조를 바꾸어 남에게  변호를 위탁하여 살기를 구하지 않는다.”  - 대구형무소 옥중투쟁 중에 (1928년) -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