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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김세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15 언론사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고, 지난해 11월~12월 을 ‘연구원 성과 집중홍보기간’으로 설정하여 홍보 를 적극 추진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년 동기대비 74.1%나 언론보도가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구 체적 통계도 제시한다. 2021년 147건에서 2022년 256건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역시 언론인 출신 다운 장점을 발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조부 채덕승 선생, 모친과 자신의 삶에 큰 영향 끼쳐 김원장의 외조부 채덕승(蔡德勝, 1898~1930) 선 생은 저명한 독립운동가 황병길 선생과 함께 독립운 동을 전개했다. 1980년 건국포장(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승격)을 추서받았다. 평소에 어머니나 가족으로부터 외조부님의 독립운동에 대해 전해들 은 이야기나 관련 자료가 있는지? 그리고 외조부님 의 독립운동이나 어머니의 이야기 등이 김원장의 삶 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했다. “외할아버지는 함경북도 경원 출신으로 중국 연변 의 혼춘(琿春)과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등지에서 무장항일투쟁을 하시다 두번이나 옥고를 치르고 만 주 노령에서 전사하신 채덕승 장군입니다. 외할아버 지는 1916년 조국광복의 뜻을 품고 만주로 건너가 중국 관청에서 근무하시다가 3·1독립운동이 일어나 자 황병길, 최경천 등 독립투사들과 길림성 혼춘현 에서 급진단 의용군을 조직하여 대일 무장투쟁을 전 개하셨어요.” 외조부님에게 3·1운동이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1920년 1월에는 경원군 용당을 습격하여 군자금 을 모집하고, 그해 4월 급진단이 혼춘한민회 군무부 로 통합된 뒤에는 대한독립군 헌병사령관에 임명되 었지요. 1921년 2월에는 혼춘을 근거로 120여명의 무장독립군을 거느리고 선전문을 배포하고 일제 밀 정들을 처단하셨어요.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금고 1 년형을 받고 복역하시다가 3개월 만에 탈옥하셨지 요. 1925년에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복심 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 를 치르셨어요. 1929년 출옥후 또 만주에서 활동하 시다가 1930년 10월 경 만주 · 연해주 지역에서 전사 하셨습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본관 1997년 동아일보 재직시 대선후보 초청 사이버토론회 패널을 마치고  기 념촬영한 김원장(왼쪽 네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