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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우리 것들 • 북간도 명동 함경도식 한옥 117 1908년 4월 27일 명동학교가 개교하였다. 명동학교는 1907년 서전서숙이 폐교당하면서 북간도 에서 항일민족의식을 가르칠 학 교가 없어지자 규암재를 중심으 로 분연히 일어난 사립학교이다. 처음에는 명동서숙으로 시작하였 지만, 곧바로 명동학교로 발돋움 하였다. 명동학교는 처음 규암재에서 시작하였다. 명동학교는 개교하 자마자 북간도를 비롯한 함경도 등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 다. 한 마디로 학생들을 주체할 수 가 없을 정도여서 1909~10년경 건물을 새로 지어 학교촌에 정착 하였다. 명동촌에 살고 있는 학생 들은 집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 지만, 외지에서 유학하러 온 학생 들은 기숙할 곳이 마땅하지 않았 다. 그렇다고 학교에 별도의 기숙 사 건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필시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이 이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 을 것은 자명하다. 이 한옥은 명동 학교의 전신인 명동서숙을 시작 하였던 규암 김약연 선생의 규암 재 앞쪽에 있어서 명동학교가 현 재의 자리에 자리 잡기 전까지 규 암재와 함께 학교의 부속 건물로 쓰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손님 이 오거나, 학생들이 임시로 기거 하는 게스트하우스, 기숙사 등으 로 종종 사용하던 집이었다고 한 다. 태극기, 무궁화, 십자가를 장 식한 지붕의 막새기와를 사용하 였다는 것은 명동학교와의 인연 이 깊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건물이 현재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김재홍 규암독립 사상연구소장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적잖은 사 비를 털어 관리비에 충당하였다. 또한 김소장의 부탁을 받아 지금 까지 관리해 온 김범춘 선생의 노 력이 없었다면 이 집은 2008년 헐렸거나 개량되어 사라졌을 것 이다. (더 많은 내용은 참고한 「기 와의 명문을 통해 본 생활문화, 장 재촌 백년가옥」, 『세계한민족문 화대전』 중국; 한국문화인류 학회, 『중국 길림성 한인동포의 생활문 화』, 국립민속박물관, 1996; 김시 덕 · 김재홍, 『항일독립운동의 기 지 북간도와 기독교, 그리고 한신 대학교』,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7 등 참조, 사진 제공 (사)규암 독립사상연구소) 최근 함경도집 앞에서의 조선족 민속 공연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 업했다(문학박사). 국립 민속박물관, 대한민국역 사박물관 학예연구관과 과장 등을 지냈으며, 현 재는 을지대학교 장례지 도학과 교수, (사)규암독 립사상연구소 부소장, 서울특별시 동산분과 문화 재위원이다. 논저로 『코로나 시대, 다시 집을 생 각하다』(2021,공저) ; 『대한독립! 그날을 위한 봉 오동전투』(2020) ; 『한국의 상례문화』(민속원, 2012) ; 「북간도 명동학교 막새기와의 꽃문양에 나타난 민족의식」, 『독립운동사연구』 48(2014) 등 다수가 있다. 필자 김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