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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3년 4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가던 길에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으나, 기 차에 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시 12분에 경성의 남문 밖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다. 박원구 군이 길을 안내하여 일행 네 사람이 제중원(濟衆院)에 같이 묵었 다. 한적한 위치에 사옥이 정미(精美)하다. 여관주인 최용호는 예수교인으로 순박 근실하며 글이 능숙하 여 더불어 이야기할 만하였다. 오후에 박원구 군이 경 신학교(儆新學校=연희전문 현재 연세대학 전신)에 가 서 우리 일행의 소문을 자못 크게 전하였다. 13일 아침에 양기탁(梁起鐸)씨가 내방하였는데, 초면에도 정성스럽고 극진한 모양이 오랜 벗과 다름 이 없다. 식후 인력거에 올라 그의 집을 찾아가니, 주 인이 다과를 마련하여 대접하며 조용히 말하는데, 정 겨운 뜻을 실감하였다. 양기탁씨가 나에게 협회에 대 하여 묻기에, 내가 대략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 는 암혈의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시국의 변화도 잘 모 르면서 오직 옛날 소견만으로 앉아 승패를 점쳤습니 다. 여러 번의 시도가 다 효험을 보지 못하고 그런 후 에야 오직 국민이 모인 단체가 나라를 보전하는 핵심 의 방법이 됨을 알았습니다. 온 나라를 둘러보아도 큰 단체로서 대한협회만한 것이 없는데, 그 전신은 곧 독 립자강회입니다. 드디어 우리 대한의 정신이 여기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고 지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 러나 필경 경회(京會 대한협회 본회)는 경회 자신일 뿐 이었습니다. 그 득실이 지방의 지회와 무슨 상관이 있 습니까? 한스러운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갑작 스럽게 강권을 가진 자에게 해산 당한 것입니다.”라 고 하였다. 양기탁씨는 “예예”하며 아무 말이 없었다. 14일 일찍 일어나 씻고 빗질하고 나니, 책상 위에 책이 한 권 있어, 훑어보니, 곧 『왕양명실기(王陽明實 記)』로 국한문을 섞어 편집한 것이었다. 대개 양명학 은 비록 퇴계 문도의 배척을 당하였으나, 그 내용이 직절하고 간요하여 속된 학자들이 감히 의론할 수 있 는 바가 아니다. 또 그 평생의 지절은 빼어나고 정신 은 강렬하였다. 본원을 꿰뚫어 보되 아무 거칠 것이 없었으며, 세상의 구제를 자임하였으되 아무 두려움 이 없었으니, 한대(漢代)와 송대(宋代)를 통틀어도 대 적할 만한 사람을 보기 드물다. 또 그의 독립과 모험 양기탁이 만주에서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1916.10.17). 만주는 당파도 없고 인물이 많으니 단합이 잘 될 것 같다는 내용이다. 재정적 기 반 을 마련하기 위해 벼농사를 권장하려고 하는데, 안창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묻고 있다(독립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