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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시론 • 동산 류인식의 삶과 교육구국운동 91 민립대학 설립운동 발기 인 참가 동산의 교육을 통한 인 재양성의 꿈은 이에 머물 지 않았다. 1920년 6월, 한규설(韓圭卨) · 이상재 (李商在) · 오긍선(吳兢善) 등이 발기인이 조선교육 협회를 창립하고 민립대 학의 설립에 착수하였는 데, 동산도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3년 3월 29일, 조선기독교청년회 관에서 기성회 발기총회를 개최하고, 발기취지서를 채택하였다. 이 취지서에 “우리의 운명을 여하히 개 척할까. 정치냐 외교냐 산업이냐, 물론 이들 일이 모 두 다 필요하도다. 그러나, 그 기초가 되고 요건이 되 며 가장 급무가 되고 선결의 필요가 있으며, 가장 힘 있고 가장 필요한 수단은 교육이 아닐 수 없다.…그 처럼 중대한 사업을 우리 민중이 직접으로 영위하는 것은 차라리 우리의 의무라 할 수 있도다.….” 이것이 민립대학 설립을 위한 첫 걸음이었다. 동산은 중앙 집행위원 30인 가운데 1인으로 선임되었는데, 경상 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전개하 였다. 이 때, 민립대학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수 립되었는데, 대체로 3단계로 나누어 실행에 옮겨가 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즉, 제1단계에는 법 과 · 문과 · 경제과 · 이과를, 제2단계에는 공과를, 제3단 계에는 의과와 농과를 설치하는 단계적 계획이 그것 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설정된 계획에 따라 대학설립을 위 한 절차를 거족적으로 추진해나가자 총독 사이또오 마코토(齋藤實)를 비롯한 일제는 크게 당황하고, 이 운동의 저지에 나섰다. 이로써, 동산 류인식을 비롯 한 민족지도자들의 민립대학 설립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창립총회(1923.3.29) 기념사진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 Herzen 교육대학교에서 명예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처장 ٠ 법과대학장 ٠ 산업 노사대학원장 ٠ 행정법무대학원장 ٠ 부총장 ٠ 총장 직무대행 등의 보직을 수행하였 다. 전공분야는 민법이며, 그중에서 특히 불법행위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 구활동을 하였다. 정년 이후에는 정심서실(正心書室)을 열고, 정심법학 포럼 대 표를 맡아서 회원들과 법학관련 학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필자 권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