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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023년 4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협동학교 설립에 앞장서다 이러한 상황에 동산 류인식은 청량산에 몸을 의탁 하고, 을미의병(乙未義兵)에 참여하였으나, 꿈을 이 루지 못하였다. 이 후, 국권회복의 방도를 모색하면 서 상경하여 류근(柳瑾) · 장지연(張志淵) · 신채호(申采 浩) 등과 교유하면서 개화사상에 눈떠갔다. 이 때가 1903 · 4년경이었는데, 이로써 동산의 생애에 큰 변 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귀향하여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첫 시작이 교육을 통해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1907년, 동산은 이상룡(李相龍) · 김동삼(金東三) · 김후 병(金厚秉) · 하중환(河中煥) 등과 힘을 모아 안동 내앞 마을에 협동학교를 세우고, 2세 교육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 이것이 교육구국운동의 시작이었다. 동산이 교무주임을 맡았는데, 교사는 신민회에서 추천하여 서울에서 보낸 인사는 이관직, 안상덕, 김기수 3명이 나 되었다. 그러나, 그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보수유림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하고, 스승으로부터 파문을 당하 는 고통도 감내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동 산 에게 힘이 된 것은 1906년 3월 고종의 흥학조칙(興 學詔勅)과 이에 이은 경상북도 관찰사 신태휴(申泰 休)의 흥학훈령이었다. 특히, 신태휴의 흥학훈령은 관내의 서당을 폐지하고 학교를 설립하도록 장려하 고 학생들의 입학을 강제하였다. 그러나, 동산은 잠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교지와 교사(校舍)도 있어야 하고, 재원이 필요하였 다. 동산은 이를 위해서 호계서원(虎溪書院)에서 기 성회를 열고 유림들의 뜻을 모으고, 가산서당(可山書 堂)에서 역사적인 개교를 하였다. 이 때가 1907년 봄 이었다. 학교의 이름은 “나라의 지향은 동국이요, 향토의 지 향은 안동이며, 면의 지향은 임동(臨東)이므로” ‘동’(東) 자를 따고, 안동의 동쪽에 자리한 7개 면이 힘을 합해 서 설립한 것이므로 ‘협’(協)자를 따서 협동학교(協東 學校)로 정해졌다. 3년제 중등과정으로 1908년 수업 을 시작하였는데, 교과목은 수신 · 국어 · 작문 · 한문 · 역 사 · 지리 · 화학 · 생물 · 체조 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동학교 설립 취지문(『황성신문』 1908년 9월 27일자). 가산서당(협동학교 교사로 사용되었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안 에 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