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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2023년 4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4월의 독립운동가 하이오에서 보통과 중학과정을 마 쳤다. 웨슬리대학에 1년 재학한 후,  1911년에 일리노이대학 의학전문 과에 진학하여 1916년 5월 31일  졸업하였다.  1911년부터 대한인국민회 시카 고지방회에 참여하여 임원과 총무 를 맡았다. 지방회의 자치제도와  규칙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 을 펼쳤다. 1916년 6월 하와이로  가서 병원을 운영하며 한인사회 의 료체계 마련에도 기여하였다. 1917년 9월 29일 한국으로 돌아와 평양에 머물 던 중 1919년 3 · 1만세시위운동을 목격하였다. 직접  만세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평양·개성·서울로  이동하며 만세시위의 열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 동하며 외교활동 분야에서 활동을 펼쳤다. 19 19년  5월, 제4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평안도 의원으로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군무위원장, 임시회계검사 원, 법률기초위원, 외무총장대리 등을 역임하였다.  안창호 · 서병호 등과 함께 대한적십자회 재건에 도 앞장섰다. 대한적십자회는 1905년 10월 대한제 국 칙령 제47호에 의해 조직되었다가 1909년 일 제의 강압으로 일본적십자사에 통합되었던 단체이 다. 발기인 대표로 1919년 8월 29일 임시정부 내 무부의 인가를 얻어 대한적십자회 재건을 이끌었 다. 회규를 제정하고, 선언서를 발표하는 등 초창기  대한적십자회의 토대 구축과 체제 확립에 힘썼다.  간호원양성소와 병원 설립도 추진하여 독립전쟁에  필요한 인력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필요 한 재정 마련을 위해 1919년 10~11월 미국 시애 틀 · 샌프란시스코 · 워싱턴 · 로스앤젤레스 · 시카고 등 지의 한인사회를 직접 찾아가 선전 · 홍보활동을 펼 쳤다. 이를 통해 미주 한인사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치체린 접견을 요청한 이희경의 서신(1922.3.22) 대한적십자회 제1기 간호원(1919.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