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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독립운동가 • 이희경 · 나용균 · 황기환 지사 69 을 보내 한국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파리강화회의 이후 유럽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 제회의에 참석하여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1919년 8월 스위스 루체른 국제사회당대회에서  ‘한국독립승인 결의안’이 통과된 것, 1919~1920 년 영국 하원에서 한국문제가 토의되고 ‘대영제국  한국친우회’가 조직될 수 있었던 것 등이 대표적  외교성과라고 할 수 있다. 임시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정부의 후원과 지원 을 얻기 위한 외교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임 시정부는 쑨원(孫文)을 수반으로 하는 호법정부 (護法政府)가 세워지자, 외무총장 신규식을 파견 하여 국서를 봉정하고, 임시정부의 승인을 요청하 였다. 이에 호법정부는 광둥(廣東)국회에서 ‘한국 독립승인안’을 상정 · 통과시키고, 임시정부의 외 교관을 광둥에 머물도록 허용하고 재정을 원조하 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와 통합정부 를 구성한 후, 러시아에 대한 외교활동에 나섰다.  1920년 국무총리 이동휘가 레닌(Lenin)에게 독립 운동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은 그 시작이었다. 레 닌은 200만 루블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고, 그 중  60만 루블을 지원하였다. 1922년 1월에는 코민테 른 주관으로 모스크바에서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 회의(일명 극동인민대표대회)가 개최되자, 대표들 을 파견하면서 적극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해 나 갔다. 2023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황기환 · 이 희경 · 나용균 등 세 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전개 한 외교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활동한 인물들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활동의 지원군, 이희경 이희경(李喜儆, 1889~  1941)은 1889년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면 관하리에서  태어났다. 순천군 사립 시 무학교(時務學校)에서 수학 하였고, 1905년 4월경 일 본 도쿄 고이카와구 야나기쵸 용전관(龍田館)에 머 물며 미국 유학을 준비하였다.  1905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유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어학을 공부하고, 오 유럽지역 외교활동을 주도했던 파리위원부가 있던 건물 이희경 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