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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한국독립운동과 블라디보스토크 41 ➌ 신한촌의 1920년 3월 1일 3 · 1운동 1주년 기념행사 ➍ 4월참변 때 희생된 최재형 ➍➌ 1918년 4월 일본은 시베리아 일본 거류민을 보호 한다는 구실로 시베리아 출병을 단행하였다. 일본군 은 1919년 말 러시아 혁명 세력이 득세하면서 위기 에 직면했다. 이에 러시아혁명군의 무장을 해제하 면서 한인들 역시 일본군의 주공격 대상이 되었다.  1920년 4월 신한촌을 기습하여 한민학교 등 주요 건 물을 불태우고 한인들의 집들을 전소시켰다. 당시  전일, 채성하  등 다수의 한인 지도자들이 체포되었 다. 중국 상해의 『독립신문』은 일본군이 아녀자와 아 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체포하는 등 블라디보스토크 에서 체포된 한인이 38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니 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는 일본 헌병대가 보명 1소 대의 지원을 받아 가택을 수사해 76명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최재형,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4명이 4월  7일 일본군에 의해 처형당했다. 1920년 4월 4일~5 일 밤, 일본군이 연해주 일대에서 러시아혁명세력과  한인들을 대상으로 체포, 구금, 학살을 자행한 ‘4월  참변’으로 인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 일 대 한인 독립운동의 기반이 파괴되었다. 블라디보스 토크의 대한국민의회, 한인사회당, 노인단 등의 주 요  간부들은 러시아혁명 세력의 영향권인 흑룡주와 만 주 혹은 농촌 지역으로 도피해서 재기를 모색했다.  한말 이후 1910년대에 걸쳐 한국 독립을 가져올  근거지로서 위상을 가졌으며, ‘원동의 서울’이라 불 리기도 했던 블라디보스토크는 재러 한인사회와 국 외 독립운동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블라디보스토크 는 1922년 일본군이 철수하고 러시아 내전이 종결 되기까지 반일· 반제국주의의 기치아래 뜨거운 한인  독립운동의 역사가 펼쳐졌던 공간이었다.  필자 주미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있 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 구 분야는 러시아 연해주와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사이다. 「이용의 민족운동 연 구」, 「최재형 연구의 현황과 향후 과제」 등의 연구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