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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3년 4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90회) 었다. 그래서 일본 경찰의 촉수가 미치지 못하고, 무 슨 일이 있더라도 치외법권으로 보호받는 그리어슨 목사 집에서 회합할 생각을 하였다. 강학린 목사가 이를 위해 성진 욱정교회(旭町敎會) 신도와 함께 3월 7일 저녁 그리어슨 목사를 방문하 였다. “그건 곤란합니다.” 부인 테나는 반대했다. 이전에 블라디보스톡에서 한국 독립운동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심한 모욕과 고 초를 당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어슨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내 집에 올 때 일일이 승낙을 맡고 다녔 습니까? 친구가 친구를 찾아와 이야기를 하는 데 새 삼스럽게 무슨 승낙이 필요합니까?” 성진의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곧 그리어슨 목사 집 에서 계획모임을 했다. 그리어슨 목사도 참석하였다. 그들은 서울 상황을 알기 위해 동지 2명을 서울에 파 견하였다. 교회 청년 김상필·이효근·서유진 등 6명은 보신남 학교 등사판을 그리어슨 목사관 구내 고용인 주택에 가져다 놓고, 3월 7일 함흥 영생학교 졸업생 허용필 (許容弼)이 밤을 새며 서울에서 품에 숨겨온 선 언서 와 격문을 밤을 새며 3만매를 인쇄하였다. 3월 9일은 일요일, 욱정교회 예배에 신도 50여 명 이 모였다. 그리어슨 목사는 욥기 37장 21절을 인용 하며 용기를 북돋우었다. “이제 사람들은 궁창에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 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북방에서는 금빛이 나오 나니 하느님께서는 두려운 위엄이 있으니라.” 이날 예배에 서울에 다녀온 2명의 교회대표도 참 석하여 강학린 목사를 비롯한 교회 간부들에게 서울 상황을 보고하고, 즉시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강 목사 이하 여러 지도자들은 다음날인 3월 10일 월요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연락과 준비를 서둘렀다. 3월 10일 성진면 시위 3월 10일 오전 10시경 보신남학교 학생 45명이 태 극기를 들고 교사 안성윤의 지휘 하에 독립만세를 외 친 후 학교를 나와 욱정(旭町)의 제동병원 앞에 모여 나팔을 불어 군중을 불러 모았다. 250여 명이 모여들 었다. 보신여학교 교사 이규용, 제동병원 직원 김원 제1회 성경반 학생들과 함께한 그리어슨목사(앞줄 오른쪽 끝, 1902년) 성진군 성진면 만세 시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