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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② 101 24일 바람결이 매우 맵다. 25일 집 식구들이 만약 정해진 날짜대로 떠났다 면 오늘이 도착하는 날이다. 저녁 먹은 후에 등불을 들고 정거장에 나가 기다렸다. 밤든 지 오래되자, 과 연 일행이 일제히 도착하는 것이 보인다. 맨 앞에 나 선 것은 아들 준형(濬衡)이고 부녀자 및 어린 것들은 한 가운데 있고, 동생 봉희 부자가 뒤를 따른다. 2천 리의 험난한 길에 탈 없이 도착하니 기쁨을 알 만하 리라. 내가 등불을 들고 앞서서 신효석의 집에 단란 히 모여 앉았다. 고향 소식을 자세히 들으니, 내가 출 발한 후 과연 여러 차례 조사가 있었고 준형은 경찰 서에 구인까지 되었었다고 한다. 26일 동생 봉희가 남은 장구를 수습하기 위해 내 일 돌아가기로 하니, 서글픈 마음에 목이 메인다. 그 편에 큰 동생 상동과 두 분 당숙께 편지를 부쳤다. 26일 식사 후에 동생을 남겨두고 발거를 타고 압 록강을 건넜다. 고개를 돌려 고국을 돌아보니, 돌아 올 기약이 묘연하다. 사람은 목석이 아닌데 감상이 없을 수 없어서 시 한수를 지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감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 27일 강을 건넘  二十七日渡江   삭풍은 칼날보다 날카로와  朔風利於劒 차갑게 내 살을 에는구나  凓凓削我肌 살 에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肌削猶堪忍 애 끊어지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腸割寧不悲 기름진 옥토로 이루어진 삼천리  沃土三千里 거기에서 살아가는 인구 이천만  生齒二十兆 즐거운 낙토 우리 부모의 나라를  樂哉父母國 지금은 그 누가 차지해버렸는가  而今誰據了 이미 내 땅과 내 집을 빼앗기고  旣奪我田宅 다시 내 처자마저 넘보나니  復謀我妻孥 머리는 차라리 베어질 수 있지만  此頭寧可斫 무릎을 꿇어 종이 되진 않으리  此膝不可奴 집을 나선지 채 한달이 못 되어서  出門未一月 벌써 압록강 도강하여 건너버렸네  已過鴨江水 누구를 위해서 발길 머뭇머뭇하랴  爲誰欲遲留 돌아보지 않고 호연히 나는 가리라 浩然我去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