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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3년 3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89회) 경기도 시흥군의 만세시위 3월 초부터 한달여 동안이나 강렬히 지속돼 서서히 타오르다 강력하게 폭발한 공세적 시위가 특징 글  이정은(3 · 1운동기념사업회장) 3월 7일 시흥공립보통학교 동맹휴교 1919년 3월 7일 시흥군 최초로 동면의 시흥공립 보통학교 120여명 학생들이 오전 11시 동맹휴교를 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주모자 5명이 연행되었으 나 동맹휴교는 계속되었다. 4월 1일에 새 학기 개학 때 입학생은 단 1명뿐이었고, 재학생의 50%가 등교 를 거부했다. 그리고 2주 정도 잠잠했다. 3월 23, 26일 시흥군 각지의 만세시위 3월 23일 군내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만세시위 가 일어났다. 북면 노량진에서 300명, 영등포면 양진 리에서 300명, 같은 영등포면 당산리에서 약 400명 의 만세시위가 있었다. 그날 밤 9시경에는 영등포면 양평리의 외곽 보리밭에서 약 300명의 주민이 조 선 독립만세를 외쳤다. 양평리의 탄원기(彈元基, 50세, 기독교인, 직공)도 참가하였다가 주도자 5명 중 하나 로 체포되었다. 체포 과정에서 순사보 1명이 시위대 에 인사불성이 되도록 구타당했다. 영등포면 영등포리에서도 약 600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주도자 5명이 체포당하고 해산되었다. 3월 26일에는 신동면 양재리에서 300여명의 군중 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흥군은 구한말까지 여의도와 양화동을 제외한 지금의 영 등포구와 금천구 및 관악구·동작구의 대방동, 신대방동, 상 도동, 안양천 이동의 구로구 동부와 경기도 광명시, 안양시  석수동, 박달동 일대에 걸쳐 있던 군현이었다. 1914년 일제 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암면과 군자면이 더해져서 서 해안 쪽으로 확대되었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이후 시흥 관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