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page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96 2023년 3월 하지만 석주는 이만도의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어떠한 방식으로 의리를 취할 것인가를 고민한 석주 가 떠올린 인물은 바로 범려(范蠡)였다. 월나라 구천 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인물이 바로 범려이다. 자정순국한 이만도의 길이 아닌 범려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석주는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에 연연한 바가 있어서 결단하지 못한  것이 아니며, 마음에 두려운 바가 있어서 결 정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다만 대장부의 철 석과 같은 의지로써 정녕 백 번 꺾이더라 도 굽히지 않는 태도가 필요할 뿐이다. 어찌  속수무책의 희망 없는 귀신이 될 수 있겠는 가?” ‘속수무책의 희망 없는 귀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 ‘대장부의 철석같은 의지’로 ‘백절불굴의 태도’로 정신 무장을 한 석주가 내린 결론은 바로 만주행이었다. 단군성조 옛터와 고구려 고토 ‘만주’ 그렇다면 왜 만주였는가? 석주가 말한다. “만주는 우리 단군성조[檀聖]의 옛 터이며, 항 도천(恒道川)은 고구려의 국내성에서 가까운  땅이었음에랴? 요동은 또한 기씨[箕子]가 봉 해진 땅으로서 한사군과 이부(二府)의 역사 가 분명하다.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이 비록  복제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는 하나, 그  선조는 동일한 종족이었고, 같은 강의 남북 에 서로 거주하면서 아무 장애없이 지냈으 니, 어찌 이역(異域)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이에 이주하기로 뜻을 결정하고 토지를 팔아 자 금을 마련한 석주는 1911년 1월 5일 가족을 남겨 둔 채 먼저 서쪽으로 출발하였다. 가족을 남겨두 고 먼저 떠난 이유는 왜인의 속박이 날로 심해져 서 온 가족이 일시에 길을 나서게 되면 혹 뜻밖의 옛날에는 궐리가 도덕의 연원이었고 道德淵源闕里古 지금은 수양산이 삼강오상의 일월이네 綱常日月首陽今 무슨 마음으로 삼천리 강토를 버리리고 가셨나 何心斷送三千里 외론 무덤을 남겨서 영원히 공경되게 하리라 留取孤墳百世欽 동토의 의관이 모두 노예가 되었으니  東土衣冠胥化奴 추생이 어찌 쇠잔한 몸을 아끼고자 하리요 鯫 生寧欲愛殘軀 망설이며 결단하지 못한 건 다른 뜻이 아니라 沈吟不斷靡他意 오를 멸망시킨 범대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네 爲有沼吳范大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