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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80 2023년 3월 사 역시 이곳에서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하얼빈 시 내의 구 일본영사관터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곳 은 남자현 지사가 잡혀 6개월간 고문을 받던 곳이었 으나 구 일본영사관은 헐리고 지금은 화원소학교(花 園小學校)가 들어서 있었다. 남자현 지사는 이곳 영사관 유치장에서 다시 살아 나갈 길이 보이지 않자 죽기로 결심하고 옥중에서 15일 동안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6개월 간의 혹독한 고문과 옥중생활로 사경에 이르게 되자 일제는 그제야 겨우 보석으로 석방하게 되지만, 그 의 몸은 죽음 일보 직전 상태였다. 그러나 남 지사는 유복자인 아들 영달(英達)에게 중국 화폐 248원을 건네면서 우리나라가 독립 이 되 면 독립 축하금으로 이 돈을 희사하라고 유언을 남 겼다. 이 유언에 따라 유족들은 1946년 3월 1일 서 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 · 1절 기념식전에서 김구, 이 승만에게 이를 전달하게 된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는 유언 남겨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남자현 지사는 1933년 8월 22일, 60살을 일기로 머나먼 땅 하얼빈에서 숨을 거두었다. 남자현 지사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조선 독립의 어머니”로 불릴 정도로 존경을 한 몸에 받았는데, 그 가 단식으로 숨지자 당시 하얼빈의 사회 유지, 부인 회, 중국인 지사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하얼빈 남강외인(南崗外人) 묘지에 안장하였다. 그러나 이곳 이 신도시로 개발되는 바람에 이장되어 현재의 문화 공원(文化公園)으로 옮겨졌다고 하지만 무덤은 찾을 길이 없는 상태다. 조선족 출신으로 자전거를 타고 항일유적지 현장 을 찾아 중국 곳곳을 찾아 헤맨 강용권 선생은 그의 책 《죽은자의 숨결, 산자의 발길》에서 1992년 6월 26일 남자현 무덤을 찾아 하얼빈 남강 무덤을 찾아 보았으나, 이미 이전했음을 알고 현재 문화공원 쪽 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당시 문화 공원에 이장했다는 무덤은 유원지를 만드는 바람에 제대로 관리가 안되고 있었고 강용권 선생이 나뒹구 는 비석들을 훑어보았지만, 남자현 지사 비석을 찾 지 못했다고 했다. 강용권 선생이 찾아갔던 1992년으로부터 22년이 ❶ 두 번째 이장지인 하얼빈 문화공원(놀이동산)에서 중국인 교수에 게 남자현 지사의 무덤이 있던 곳을 묻고 있는 도다 이쿠코 작가 ❷  남자현 지사가 잡혀 6개월간 고초를 겪은 하얼빈 구 일본영사관  자리에는 화원소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도 잡혀 있 었던 곳이다. ❷ 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