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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 권애라 · 심영식 · 임명애· 신관빈 지사 75 ② 심영식, 장님으로 만세 시위에 앞장서다 체포되다 1896년 7월 15일 개성의 목재상 집안에 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심명철(沈明哲)이었 다. 1900년 열병을 앓은 뒤 시력을 잃어 시 각 장애를 갖게 되었다. 평양맹아학교, 호 수돈여학교를 거쳐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 에서 공부했다. 1919년 무렵 기독교 전도 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 했다. 3월 4일에 개성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 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19년 10월에 가출옥했다. 투 옥 중 간수에게 뺨을 맞아 고막이 터져 평생 한쪽 귀 에서 고름이 나오는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1920년 에는 3 · 1운동 1주년을 맞아 개성 미리흠여학교 학생 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형 을 선고받았으나 6개월 만에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③ 신관빈, 3 · 1운동의 교훈으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 을 주장하다. 1886년 11월 10일 황해도 봉산군 서종면 동둔리 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는 경기도 장연군 대남면 장좌리 706번지에 주소를 두고 있었지만 호수돈여 학교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기독교 전도사 활동을 하 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어윤희의 권유에 따라 오후 2 시 경 어윤희, 권애라, 심영식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 립선언서를 배포했다. 다음날인 3월 2일 교회에서 체포되어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11일 만기출옥한 직후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동아일보』 1920년 4월 18일자에 실린 「출옥자 감상문」에 따르면 그는 감옥생활에 대 해 “사람으로는 받지 못할 만큼 망측한 대접을 받았 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우리의 할 일은 학교를 많 이 설립하여 청년남녀에게 교육을 많이 시키고 해 외로 유학을 보내 인재를 양성’하는데 있다고 주장 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파주 최초의 시위를 이끈 구세군, 임명애 1886년 3월 25일 경기도 파주군 와석면 교하리 578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남편 염규호와 서대문감옥에 수감된 신관빈 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