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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3월의 독립운동가 74 2023년 3월 1919년 3월 1일 북부 예배당에 은닉되어 있던 독 립선언서를 직접 꺼내 와 어윤희, 심영식, 신관빈과 함께 개성 시내에 배포하고 3월 2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모의했다. 독립선언서 배 포 혐의로 체포되어 1919년 5월 30일 경성지방법원 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경성복심법원에 상 고했으나 1919년 7월 4일 형이 그대로 확정되어 옥 고를 치렀다. 1919년 10월에 출옥한 후 1920년 7월에는 대한 민국 임시정부 국내 조직원으로서 독립 자금 모집 에 관여한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어 조사 를 받았다. 그해 가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해애국부 인회와 고려공산당 상하이 지부에서 활동을 하면서 쑤저우의 감리교계 여학교인 징하이 여숙을 다녔다. 1922년 1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 회에 고려공산당 상하이지부 위임장을 갖고 참석해 상해애국부인회 대표로 활동했다. 이때 의열단원 김 시현을 만나 결혼했다. 다시 국내로 돌아와서는 여 성 웅변계를 대표하는 명망가로 자유연애를 실천하 고 여성의 단발을 주장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1940년에는 항일 독립운동을 참여하기 위해 중 국 베이징으로 건너갔다가 아들 김봉년과 함께 지린성 스자툰의 영신농장을 거점으로 독립군 병력 충원을 위한 활동을 했다. 1943년 3월 일본 관동군 헌병대 에 체포되어 만주국고등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장춘형무소에서 옥 고를 치르던 중 1945년 광복으로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경찰의 심영식 감시 상황을 보도한  조선일보(1924.11.29.) 심영식, 유관순 등이 수감된 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