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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 권애라 · 심영식 · 임명애· 신관빈 지사 73 서를 들고 나와 곧바로 어윤희를 찾아갔다. 어윤희 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미리흠여학교를 졸업한 후 호수돈여학교 기숙사에 기거하며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었다(2011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권애라와 어윤희, 두 사람은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 언서를 배포하기로 모의했다. 3월 1월 오후 2시경, 서울, 평양, 진남포(평남), 의 주, 선천(평북), 원산(함남)은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 로 들썩이고 있었다. 이 무렵 개성에서는 권애라, 어 윤희와 함께 전도사인 신관빈, 심영식 등이 개성 시 내에서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다음날인 3월 2일 권애라는 호수돈여학교 기도 실에서 이경신, 류정희, 조화벽, 김낸시, 이봉근, 조 숙경, 김신렬, 최 옥순 등 학생들과 함께 만 세시위를 준비했다. 다음날인 3월 3일 오 후 2시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은 기도회를 마 치고 거리시위에 나섰 다. 개성 최초의 만세 시위가 일어난 것이 다. 호수돈여학교를 출발한 여성들은 시 내를 돌며 ‘찬미가’와 ‘독립가’를 부르고 독 립만세를 외쳤다. 이 에 군중들이 가세하면 서 시위대의 규모는 2,000여명으로 늘어 났다. 시위대는 남본정 경찰관파출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훼손했다. 송도고등보통학교생 200여명 은 태극기를 들고 합류해 자정 무렵까지 만세시위 를 벌였다. ① 권애라, 만세시위의 불씨를 살리다 1897년 2월 2일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동산리에 서 태어나 개성에서 자랐다. 1914년 호수돈여학교 초등과와 중등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 이화학당 유치원사범과에 입학해 1918년에 졸업했다. 유관순 이 1916년에 이화학당에 입학했으니 2년 동안 둘은 동문수학을 한 셈이었다. 이화학당 졸업 후에는 호 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의 교사로 재직했다. 권애라의 동아일보 기고문(1925.10.15)권애라(동아일보 192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