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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58 2023년 3월 도산 안창호의 생애와 독립운동 1878년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했 다. 호는 도산(島山).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 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 을 염려하던 중 평양에서 청일전쟁의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1895년 상경하 여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기독교도가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 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쾌재정(快哉亭)에서 개최하여 젊은 나이에 많 은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했다. 훗 날 종교가이며 교육자로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이승훈(李昇薰)은 이 연설에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굳혔다고 밝힐 정도였다. 1899년 고향 강서에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 의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우는 한편,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다. 또 큰 일을 하기 위해서 는 새로운 학문을 더욱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 을 절감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 프란시스코에서 노동을 하면서 초등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인 교포들의 권익보 호와 생활향상을 위해 한인공동협회를 만들 어 『공립신보(共立新報)』를 발간했다. 그 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사5조약) 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귀국 핵심공적 신민회, 흥사단 등을 조직하 여 독립운동의 기초를 닦았 다. 1912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회장, 1919년 대 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서리겸 내무총장을 맡아 독 립운동의 통합과 단결을 주 도하였다. 주요약력 ●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 출생 ● 1907년 신민회 조직, 대성학교 설립 ● 1919년 임시정부 국무총리서리 겸 내무총장 ● 1923년 국민대표회의 부의장 ●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 1938년 3월 10일 순국 “묻노니 여러분이시어, 오늘 대한 사회에 주인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  …  … 다만 자기의 지성으로 자기 민족사회의 처지와 경우를 의지하여 그 민족을 건지어 낼 구체적 방법과 계획을 세우고, 그 방침과 계획대로 자기의 몸이 죽는 데까지 노력하는 자가 그 민족사회의 책임을 중히 알고 일하는 주인이외다.” - 『동아일보』 1925. 1.25일자 「주인인가 여인(旅人)인가」중에서 -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안창호(安昌浩) 선생 글  편집부 이타심‧희생심 갖춘 ‘ 한국 혁명의 진정한 리더 ’ 신민회‧흥사단‧임시정부 이끌며 대동단결 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