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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국민대표회의와 창조파의 논리, 향후 동향 45 산당), 이청천(고려혁명군정의회), 임표(고려혁명군),  채영(고려혁명군), 윤덕보(광정단), 강구우(북간도 대 한국민회), 김창숙(북경교민단), 김호익(광정단), 한 형권(상해파 고려공산당), 서병호(신한청년당), 유시 언(길림교육회), 오창환(블라디보스톡 지방대표), 김 응섭(기독교), 박건병(북경 통일당), 김세혁(대한독립 단), 도인권(상해 교민단), 한창걸(고려혁명군), 김세 준(북경 교민단), 서왈보(군사통일회), 최준형(고려혁 명군정의회), 원세훈(대한국민의회), 이상호(하와이  독립단), 장기영(의용군사회), 지장회(의군단)였다.  국무위원은 내무위원장 신숙, 외무위원장 김규식, 군 무위원장 미정, 재무위원장 윤덕보, 법제경제위원장  김응섭이었다. 그리고 국민위원회 고문은 문창범(대 한국민의회), 구춘선(북간도 대한국민회), 방우룡(대 한의용단), 이상룡(대한독립군), 김도현(대한독립군),  이남기(불명), 한명세(이르크츠크파 고려공산당), 임 석우(태극단), 신채호(북경 보합단), 김성극(광복단),  이동휘(상해파 고려공산당), 양기탁(대한통의부), 강 두황(광복단), 마진(북간도 대한국민회), 박은식(독립 신문 주필), 최병규(북간도 대한국민회), 윤세복(광정 단), 김병순(광복단), 최명록(대한군무도독부), 함삼 여(하와이 독립단), 김상헌(고려혁명군), 박장호(의군 단), 현천묵(대한군정서), 이범윤(광복단), 이동녕(임 시정부 내무총장), 김치보(노인단), 김약연(북간도 명 동학교장), 홍범도(대한독립군), 우시화(이르크츠크 파 고려공산당), 남세윤(의용단) 등이었다. 국민위원 과 국무위원은 군사통일회의와 대한국민의회와 이 르크츠크파 고려공산당 등 창조파 인사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고문은 각계의 명망가들이 망라되고  있었다.  ➌ 국민위원 회의를 자신의 집에서 연 윤해의 일제 감 시대상 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제공) ➍ 국민위원회 외무위원장 김규식 ➌ 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