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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국민대표회의의 개최 배경과 전개 과정 31 택을 서기로 지명하였다. 임시의장 안창호가 “지금  이 시간에 조선 민족의 대표회가 열립니다”라고 선 포하고, 일동이 일어나 “국민대표회 만세”를 삼창함 으로써 국민대표회의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임시회의 과정에서는 기원 · 민국 연호 논란과 임시 의장 안창호에 대한 자격 시비 논란(위임통치 청원  연루)이 있었다. 토론 끝에 대표 자격을 인정받은 안 창호가 1월 16일에 임시의장에 복귀하였고, 다음날  전체 회의 규정안이 통과되었다.  1월 18일 회의에서 정식회의를 진행할 의장에 김 동삼, 부의장에 윤해와 안창호가 선출되었고, 다음날  회의에서 비서장에 배천택, 비서에 김우희, 오창환,  박완을 선출하였다. 정식회의의 집행 간부 선출에  이어 대표 자격 심사위원(5명)을 선출하였고(1월 22 일), 의정(안건) 기초위원(5인)을 선거하였다(1월 23 일). 1월 30일에는 삼일당에서 국민대표회의 주최로  약 90 명의 대표들과 일반 동포들이 참여한 가운데  순국 제현 추도회가 열렸다. 국민대표회의의 정식 개막과 정식회의 개최 1월 31일 오후 2시부터 공동조계 모이당(慕爾堂) 에서 대표 88명과 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식의  개막식이 거행되었다. 국민대표회 주비위원장 남형 우가 국민대표회의의 소집 동기와 취지를 말하고 주 비회 성립후 2년 만에 개최된 사실을 설명하고 향후  회의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였다. 의장 김동삼의 주 재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부의장 윤해의 독립선언서  낭독, 3 · 1독립가 합창, 각지로부터의 축전 낭독이 있 었다. 의장 김동삼의 개막사에 이어 신숙, 강석훈, 안 창호, 김마리아 등의 연설이 끝난 후 기념 촬영을 하 고 만세를 삼창하고 폐회하였다. 2월 2일 본격적으로 시작된 회의는 공동조계 침 회 당(침례교회당)에서 개최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회 의 의정(안건)을 통과시켰다(주간에는 침례교회당,  야간에는 삼일당에서 회의). 1.선서 및 선언서, 2.보고(서면. 국민대표회주비회 경과사 정보고, 각지방 및 단체의 사정 보고), 3. 시국문제, 4.독 립운동대방침(군사, 재정, 외교), 5.생계문제, 6.교육문제,  7.노동문제, 8.국호 및 연호, 9.헌법, 10.과거문제(위임통 치청원사건, 자유시사변, 40만원 사건, 호림(虎林) 밀산 (密山) 사건, 관전(寬甸) 통의부사건, 기타 사건), 11.기관 조직, 12.신사건, 13.선포 국민대표회의 출석원 서명부(필자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료).  의장 김동삼과 부의장 안창호와 윤해서명이 있다.(동그라미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