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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109 설을 빌어 소위 ‘내선일체(內鮮一 體)’를 상징하는 그림, 즉 일본인 서양화가 와다 산조(和田三造)의 벽화 ‘하고로모(羽衣)’로 꾸며졌 다. 주목되는 사실은 형식적으로 는 서구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실 내 공간에 일본 전래의 신화를 담 아 내부를 장식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광복 후 미 군정에 의해 ‘캐피탈홀(Capital Hall)’로 불리다가 1948년 8월 대 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중앙청 (中央廳)’이라는 이름으로 34년간 정부청사로 사용됐다. 이후 1986 년 8월 21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사용되다가 논란 끝에 1995년 8월 15일 돔 상부 랜턴 의 해체를 시작으로 1996년 11월 13일 완전히 철거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30대 중반 이상 연령의 한국인들 가운데에는 서 울의 대표적 건축물의 하나로 기 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실 건 축물 자체로는 상당한 의미를 갖 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보존론, 철거론, 이전론 등의 많은 논란 끝 에 결국 철거된 가장 큰 원인은 이 건물의 위치였다고 할 수 있다. 실 제로 일제의 정략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 청사 부지는 경복궁 근정 전의 앞마당인 흥례문 권역인데, 조선의 수도 한성의 중심축을 이 루고 있던 육조거리의 정점에 총 독부 청사를 세운 것이다. 이는 조 선인들의 문화적·역사적·민족적 상징과 정체성을 심리적으로 압 도하고자 한 정치적 의도였다. 이 때문에 광화문과 흥례문, 강녕전 과 교태전 등 4000여 칸 경 복궁 전각을 헐고 근정전을 가로막은 채 지어졌다 옛 조선총독부 청사가 헐려 그 잔재를 전시하는 공간을 둘러보 며 새삼스럽게 건축의 유한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리 많은 예 산과 정성을 들여 지은 건축물이 라고 해도 부적절한 의도가 깃들 고 위치가 부적합하다면 그 존재 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한동 욱,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통해 본 건축의 유한성」 참조) 1995년 8월 15일 일제 식민잔재 청 산 상징·민족정기 회복위해 철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논의는 광 복 이후부터 제기됐지만, 여론화에 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1991년 ❽❽ 전시공원의 제1전시공간 ‘침울한 역사의 장(첨탑 및 모서리탑 석조장식물)’과 첨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