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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104 2023년 3월 재형 선생이 1919년부터  1920년 4월 일본 헌병대에  의해 학살되기 전까지 거주 하였던 곳이다. 집 벽을 어루만지고 뺨을 대보 았다. 초겨울이라 얼음처럼 차가 웠으나 내 가슴은 독립투쟁에 바 친 선생의 생애와 순국 때문인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 선생께서 이전에 살던 집도 그대로 잘 있었 다. 남의 사유재산이라 표시판도 없었다. 나는 그 푸른색의 집 옆 빈 터를 두리번거렸는데, 바로 옆집에 서 이갑 선생과 친형인 이휘림(李 彙林) 선생이 살았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李應俊), 그는 일본 육사 선배 김경천, 동기생 지청천(池靑 天)·홍사익(洪思翊)과 더불어 요 코하마에서 약손가락 피를 흘려 고량주에 섞어 마시며 독립전쟁 에 몸 바치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배신하고 고위 장교로 승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랐 다. 나는 그를 잊지 말자고 장편 팩션 『마지막 무관생도들』을 썼 다. 그는 김경천 · 지청천 · 홍사익 과 공동 주인공이다. 이응준은 1917년 국제간섭군 으로 출병했을 때 이미 고인이 된 장인인 이갑 참령의 집을 찾아갔 다. 그때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아우인 안정근(安定根)·안공근 (安 恭根) 두 분도 만났으니 마음만 먹으면 무장 항쟁의 길로 갈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전로한족중앙회의 건물의 태극기 현판 전로한족중앙회의를 개최한 건물은 최재형 선생 댁에서 멀지 않은, 사통팔달한 큰길에 흰 대리 석의 아름다운 자태로 앉아 있었 다. 멀리서 보면 백계 러시아 처 녀처럼 아름답고 가까이 가니 매 우 웅장했다. 나라가 망국의 벼랑으로 기울자 애국지사들의 발길이 연해주로 향 하기 시작했다. 간도관리사 직책 전로한족중앙총회가 열렸던 건물. 지금은 학교로 쓰이고 있다.